“뿌듯했어요. 제가 몸담았던 발레단에서 이 친구를 너무 소중하게 수석무용수로 대해주고 있으니까요.”(김세연)
먼저 세계 무대에 나갔던 선배는 후배가 기특하고 후배는 선배가 존경스럽다. 김세연(38) 스페인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는 최영규(27)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를 두고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친구”라고 치켜세웠고, 최영규는 “항상 자기 관리가 철저한 대단한 무용수”라며 김세연에게 화답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세연과 최영규가 국내 무대에서 첫 호흡을 맞췄다. 마포문화재단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와이즈발레단과 공동제작한 발레 ‘지젤’을 통해서였다. 두 사람의 첫 만남 만으로도 공연은 화제가 됐다. 15, 16일 공연을 위해 입국했던 이들을 공연 전 만났다.
국내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무용수 활동을 시작한 김세연은 이후 미국 보스턴발레단, 스위스 취리히발레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등을 거치며 20여년 간 국내를 대표해 온 발레리나다. 지금도 스페인 국립무용단에서는 단 두 명밖에 없는 ‘프리메라 피규라’(수석무용수보다 한 단계 위의 최고무용수를 지칭)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이번 ‘지젤’로 2013년 국립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4년 만에 국내에서 전막 무대에 섰다.
무용수들이 꼭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손꼽히는 ‘지젤’을 고등학생 때부터 셀 수 없이 해 왔지만 연륜이 쌓일수록 “일이 늘어난다”고 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손끝과 발끝까지 신경 쓰게 됐어요. 또 어렸을 때는 어느 정도 통증이면 다리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울로 체크를 한 번씩 해야 되더라고요(웃음).” 표현력은 더욱 깊어졌지만, 체력의 변화 역시 체감한다는 의미다.
어느덧 하나 둘 은퇴하는 또래 무용수들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그와 절친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황혜민(39)과 상임객원수석인 엄재용(38) 부부가 11월 ‘오네긴’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세연은 “무용수에게 은퇴란 한 번 죽는 느낌일 수 있다. ’춤을 출 수 있는 만큼 춘 것 같아 은퇴를 결정했다’는 황혜민의 말에 여러 감정이 오갔다”며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에도 발레에 대한 김세연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30대 초반 무용을 정말 못할 수도 있는 부상을 겪고 나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은퇴 때 느낀 감정을 겪은 것 같아요. 언제 은퇴할 거라고 정해놓고 은퇴할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요.”
최영규는 김세연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했다. 그는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신예’다. 그러나 입단 5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진하며 무용계를 휘어잡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기 하루 전날에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서 1년에 한 명에게만 수여하는 알렉산드라 라디우스 상을 받았다. 김지영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2007년 이 상을 받은 이후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다. 심사위원단은 “경이롭고 다재다능한 무대 매너를 가진 댄서”라며 “월등한 기교를 선보이면서도 항상 우아하고 세련미가 넘친다”고 최영규를 극찬했다.
20대 초반 네덜란드로 건너가 이방인으로서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영규는 “상을 받았다는 그 자체도 의미가 크지만 이제는 저를 인정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고 모두가 저를 축하해준 게 더 의미가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최영규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김기민(25)과의 만남 만으로도 현지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인정받는 무용수가 됐다. 공연 전 연습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갔던 김세연은 “김기민씨가 암스테르담에 놀러 왔을 때 최영규씨와 함께 발레 클래스를 했는데 발레단 단원들이 구경 오고 선생님들도 ‘한국팀’이라고 불렀다”며 “두 사람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 10년 넘게 지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다시 고향을 떠나 자신의 자리에서 매진할 이들은 “우리 발레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 드린다”고도 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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