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안동소주’와 상생 행보
5월부터 두달간 직원들 상주
스마트공장 변신 기술 지원
술 병입 등 대부분 공정 자동화
생산 2배 늘어 올 매출 30억 기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경북 안동 풍산읍은 공기만큼이나 물이 좋기로 소문났다. 7년 전 ‘명인 안동소주’ 공장이 여기로 옮겨온 것도 전통주에 맞는 좋은 물을 좇아서다. 생산라인 4개가 전부인 이 조그만 술도가에 올 5월부터 삼성전자 직원들이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최근 찾아간 명인 안동소주 공장은 입구부터 누룩이 뿜어내는 시큼한 발효 향이 코를 자극했다. 술 공장은 이 냄새 빼고는 모든 게 바뀌었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산업통상자원부, 경북도와 함께 추진하는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에 선정돼 삼성전자 직원 3명으로 구성된 스마트공장 멘토단이 찾아와 하나씩 뜯어고치기 시작하면서다. 기술멘토인 이상열 삼성전자 부장은 “잠은 근처 모텔에서 자면서 이곳 직원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5월부터 2개월 동안 공장에 상주했다”며 “가족형 기업으로 아주 영세하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전통주 공장의 혁신은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위생문제를 해결한 뒤에는 작업자들의 손에 들려 있던 고무망치부터 없앴다. 술이 담긴 도자기 주둥이에 코르크 마개를 끼우고 일일이 두드려 닫던 작업을 이제 기계가 대신한다. 수축 필름을 밀착시키느라 병 끝을 잡고 뜨거운 열 앞에 서 있던 밀봉작업도 자동화 기계 덕분에 생략됐다. 피로도가 줄어든 작업자들은 특이 모양 술병의 병입 등 자동화가 힘든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명인 안동소주는 2톤짜리 발효탱크 28개가 꽉 들어차 있는 발효실에서 40일 간 숙성되는데 세 차례에 걸친 물의 배합에서 술맛이 좌우된다. 이전에는 직원들이 수기로 날짜를 적어 탱크를 돌며 발효 상태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현재는 입구에 달려있는 모니터가 탱크별 발효 완료까지 남은 시기와 물 배합 시기까지 자동으로 표시한다.
업체 대표 “돈 준다고 도움 안돼
삼성 지식 나눠받은 기분” 감회
가장 기본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던 정량 생산도 구현했다. 기존에는 술 따르는 양이 제멋대로였다. 이 부장은 “기계 노후화로 술이 옆으로 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작업자들이 모든 병에 정량보다 5%씩 더 붓고 있더라”며 “주사기 원리로 정확한 양을 수조에서 뽑은 뒤 병에 넣는 방식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스마트공장 지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단순한 상생을 넘어 무너져 가던 전통주의 명맥을 일으켰다는 게 박찬관(60) 명인 안동소주 대표의 설명이다. 1992년 안동소주를 만들기 시작한 명인 안동소주는 한때 연매출이 200억원에 달했다. 공장 규모도 지금의 3배였다고 한다. 박 대표는 “그땐 백세주도, 산사춘도 없을 때라 안동소주 명성과 희소성이 컸지만 지역마다 전통주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유통구조가 대형마트 중심으로 바뀌면서 힘들어졌다”며 “우리 공장도 순식간에 매출이 10분의 1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루 1,200병 생산하던 이 공장은 스마트공장 지원 이후 매일 2,000병씩 만들어 낸다. 2014년 매출은 13억원이었지만 올해는 30억원이 예상된다. 추석 대목을 맞아 벌써 술 원액이 동이 났을 정도다. 높아진 생산성으로 거래선을 늘리면 앞으로 증축과 고용 확대도 진행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많은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돈만 준다고 도움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삼성의 지식을 나눠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안동소주의 맥을 박 대표에게 전수해 준 아버지 박재서 명인(제6호ㆍ81)의 감회도 남다르다. 그는 “지금껏 전통주는 제조 비법을 꽁꽁 숨겨온데다 위생이나 자재 관리도 주먹구구식이었는데 이제야 무엇이 혁신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안동=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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