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 아빠’ 이동국(38ㆍ전북현대)이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후 아무도 가지 못한 ‘70(골)-70(도움)’ 고지를 밟았다.
이동국은 17일 포항 ㆍ스틸야드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1부) 29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통산 197골 71도움의 금자탑을 쌓았다. K리그 역대 1호 ‘70-70’ 클럽 가입이다. 전북은 4-0 완승을 거두며 선두를 굳게 지켰다.
프로축구 34년 역사에서 ‘50-50‘ 클럽 이상 가입자는 8명에 불과하다. 이동국 전에는 신태용(48ㆍ99골 68도움) 국가대표 감독과 지금은 외국으로 떠난 몰리나(37ㆍ68골69도움)가 세운 ‘60-60’이 최고 기록이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196골 69도움을 기록 중이던 이동국의 몸은 가벼웠다.
그는 전반 41초 만에 선제골을 터뜨리며 기세를 올렸다. 전반 14분 이재성(24)의 추가골로 앞서던 전북은 전반 29분 세 번째 골에 성공했다.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이동국이 강한 왼발 땅볼 슈팅으로 연결해 그물을 흔들었다. 하지만 정밀 판독 결과 골대 앞에 있던 동료 한교원(27)의 발에 살짝 맞고 들어간 것으로 밝혀져 이동국의 도움이 됐다. ‘70-70’ 클럽에 가입하는 순간이었다. 이동국은 만족하지 않고 후반 16분 헤딩 패스로 이재성의 골을 또 도왔다. 이동국은 프로축구 최초 200골 고지에도 단 3골 남겨놓고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면 머지않아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국 다음으로 통산 득점 2위는 데얀(36ㆍ서울ㆍ170골)으로 격차가 크다.
이동국이 대기록을 달성한 장소와 상대가 포항이라는 점도 뜻 깊다. 포항이 고향인 그는 1998년 포항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11득점 2도움으로 신인왕을 받았다.
이동국은 20년 가까이 한국 축구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군림했지만 늘 순탄한 인생이었던 건 아니다. 데뷔 후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 국가대표에 모두 뽑히며 혹사논란이 일 정도로 많은 경기를 뛰었지만 2002년 한국이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쓸 때 정작 그는 대표팀에 들지 못했다.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던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월드컵 무대를 또 밟지 못하는 아픔도 겪었다.
2007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진출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고 이듬 해 성남 일화로 복귀한 뒤에도 고난의 길은 계속됐다. 성남으로부터 방출 당하다시피 밀려나 2009년 전북에 둥지를 틀었는데 여기서 ‘제2의 전성기’를 꽃피웠다. 2009년 무려 22골을 넣으며 그 해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차지했다. 2011년에는 득점(16골) 못지않게 많은 도움(15개)으로 도움왕에 올라 ‘골만 넣는 선수’라는 편견을 날려버렸다. 이후 스피드와 체력이 떨어졌다는 평가 속에서도 철저한 자기 관리로 롱런 중이다. 얼마 전 국가대표에도 뽑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힘을 보탰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부담으로 왼쪽 눈 핏줄이 터진 가운데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맏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이동국이 힘들 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가족이다. 아내 이수진(38) 씨와 사이에서 쌍둥이 딸 재시ㆍ재아(10), 설아ㆍ수아(4), 막내아들 시안(3)을 낳은 그는 예능 프로그램 출전으로 ‘대박이 아빠’로 불리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동국은 경기 후 “내가 태어난 곳에서 대기록을 달성해 감회가 새롭다. 골을 넣는 것보다 도움이 더 어려웠는데 동료들의 도움으로 운 좋게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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