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터지지 않아 사망자 없어
정부, 경보단계 최고 수위로 격상
거리ㆍ공연장ㆍ사원…테러의 일상화
‘일상화한 공포’가 영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올해 들어 전례 없이 반복되는 각종 테러 앞에 피해 규모의 경중에 관계없이 공동체 내 공포와 인내의 균형점이 파괴된 것이다. 여기에 당분간 점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테러 도전에도 뾰족한 대응 수단은 없어 위기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파슨스 그린 지하철역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의 사망자는 없었다. 비록 제대로 터지지 않았지만 사제폭발물 공격으로 화상을 입는 등 30명이 다쳤음에도 올해 영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테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피해는 경미했다. 런던 경찰은 16, 17일 각각 18세, 21세 남성을 테러 용의자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수에 그친 폭탄 테러도 영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3월 런던 웨스트민스터 인근 승용차 테러(5명 사망)를 시작으로 맨체스터 공연장 자살폭탄 테러(5월ㆍ22명 사망), 런던브리지 트럭ㆍ흉기 테러(6월ㆍ7명 사망), 런던 이슬람사원 차량 테러(7월ㆍ1명 사망)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굵직한 공격 행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사건 직후 추가 테러 공포가 재연됐다. 영국 정부는 이튿날 테러경보 단계를 ‘심각(severe)’에서 최고 수위인 ‘임박(critical)’으로 격상했고, 경찰은 런던 교외 선버리의 한 주택에서 폭발물 색출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배가된 테러 공포의 증거는 수치로 확인된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6월까지 최근 1년간 테러 관련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37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나 급증했다. 대부분 무슬림인 수감자 수 역시 200명을 넘어섰다. 미 CNN방송은 “사망자는 적지만 영국은 1970~80년대 수천 명을 숨지게 한 무장단체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테러와 유사한 공격 빈도를 단 1년 동안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은 “영국 특유의 ’블리츠 정신(blitz spirit)’이 사라졌다(뉴욕타임스ㆍNYT)”고 진단한다. 블리츠 정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낸 독일 나치의 대공습에도 공포와 좌절을 이겨 낸 영국의 공동체 정신을 말한다. 하지만 상시적인 테러 위협이 자리 잡으면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영국민의 용기마저 실종됐다는 얘기다.
테러 세력은 온라인 미디어를 활용한 교묘한 선전ㆍ선동술로 공포심을 극대화했다. 6월 런던브리지 차량 공격은 사실 아마추어 테러 추종자가 저지른 성격이 강하나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는 즉각 배후를 자처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각종 미디어 도구를 활용해 나치 공습에 버금가는 조직적 테러로 둔갑시켰다. 이번 공격 역시 IS를 따르는 이른바 ‘외로운 늑대’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노아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NYT에 “테러범들은 스스로를 군대 장군이 아닌 공연 제작자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당국의 테러 대응이 갈수록 커지는 공포를 전혀 상쇄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현재 영국 국내 정보기관 MI5가 ‘관심 대상’으로 분류한 테러 관련자 3,000여명 중 500명만 적극적 감시를 받고 있다. 용의자 한 명당 24시간 감시체계를 갖추려면 적어도 24명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7만2,000명의 인원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MI5 요원은 4,000명뿐이다. 게다가 런던브리지 테러범처럼 테러 세력과 연관성이 불분명한 추종자들은 아예 추적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총기 규제에 엄격한 영국의 특성도 ‘저강도 테러’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앤드류 파커 MI5 국장은 “테러 도전은 앞으로 한 세대 동안 지속될 것”이라며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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