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지난 열흘 동안 ‘히딩크 영입 논란’으로 쑥대밭이 됐다.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을 9개월 앞둔 시점이다.
거스 히딩크(71ㆍ네덜란드) 감독과 지금도 친분 관계를 유지하는 지인들은 이 사태가 벌어진 뒤 한결 같이 이 사건을 처음 촉발시킨 당사자로 알려진 “노제호 (거스 히딩크 재단) 사무총장이 ‘오버’하고 있다”며 어이없어 했다. 그들은 “히딩크는 신태용(48) 감독이 뻔히 있는데 자리를 뺏겠다고 나설 사람이 아니다” “이번에 실패하면 2002년 4강 신화가 다 퇴색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히딩크는 아주 치밀하다. 만약 의향이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히딩크 감독은 지난 14일 네덜란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축구를 어떤 형태로든 돕고 싶다”라고 직접 말했다. 여러 제약들을 감안해 기술고문 쪽에 비중을 뒀지만 대표팀 사령탑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때 아닌 진실 공방도 불거졌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있는 히딩크) 재단 사람들을 통해 지난 6월 대한축구협회 내부 인사에게 감독이든 기술고문이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했다. 당시는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전 감독이 경질되고 축구협회가 새 사령탑을 물색하던 시기다. 팬들은 “축구협회가 히딩크 제안을 듣고도 묵살했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행간을 읽어보면 단정하긴 무리가 있다.
‘부회장님~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국대감독을 히딩크 감독께서 관심이 높으시니 이번 기술위원회에서는 남은 두 경기만 우선 맡아서 월드컵 본선 진출시킬 감독 선임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월드컵 본선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좀 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찾는 게 맞을 듯해서요.~~ ㅎ‘. 노제호 총장이 6월 19일 김호곤 기술위원장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이다.
최종예선 마지막 두 경기는 ‘임시 감독’으로 치르고 본선에 오르면 히딩크 감독에게 맡기자는 의미다. 이걸 ‘제안’이라 보기도 어렵다. 당시는 김호곤 부회장이 기술위원장에 선임(6월 26일)되기도 전이었다. 김 위원장도 답을 보내지 않았다.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언론에 나온 그 메시지를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대표팀 감독 자리가 저런 식으로 추천하면 그게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제안이 되는 거냐. 히딩크가 아니라 히딩크 할아버지라도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가 그렇게 우스운 위치에 있느냐”고 발끈했다.
노제호 총장 말도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그는 지난 6일 본보 통화에서 “6월에 축구협회에 제안을 넣은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축구협회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히딩크 신드롬’은 축구협회가 지난 수년 간 보여준 ‘철학 부재’의 결과물이라 봐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번 사안에 대한 대처도 미흡했다. 김 부회장이 지난 7일 우즈베키스탄에서 돌아온 직후 “노 총장에게 연락을 받은 적은 있지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정리했다면 적어도 ‘거짓말 했다’는 틀에 갇히지는 않았을 거다.
축구협회는 사령탑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신태용호로 월드컵을 치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히딩크를 모셔오라”는 반대 여론은 분명 큰 부담이다. 한 축구인은 “신태용 감독이 ‘히딩크의 늪’에서 월드컵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고 씁쓸해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여론을 누를 수는 없다. 축구협회가 차근차근 월드컵 플랜을 짜서 청사진을 제시하고 최종예선보다 나아진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길뿐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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