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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이름 고상돈…산에서 왔다, 산에서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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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이름 고상돈…산에서 왔다, 산에서 지다

입력
2017.09.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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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돈이 1977년 9월 15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상돈이 1977년 9월 15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늘이 무너져도 우리는 꼭 이겨서 돌아가야 한다. 일생의 모든 것을 건 이 도전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건 생명의 파멸을 뜻하는 것이다. 패배란 죽음만큼 괴로운 것.’ –에베레스트 등정 3일 전 고상돈의 일기

1977년 9월 15일, 마침내 고상돈 대원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성공을 알린다. 해발 8,848m 세계의 지붕, 그 마지막 땅덩어리는 1평 남짓 좁은 면적이었다.

당시 원정대는 1차 공격조가 28개의 산소통을 다 쓰면서도 정상 앞 100m 지점에서 실패해 2차 공격조인 고상돈의 등정이 불투명했다. 그러나 산 기슭에서 프랑스 원정대가 버리고 간 산소통 12개를 발견한 것이 행운이었다. 정상등극의 기쁨은 오로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상에 1시간 가량 머물면서 1976년 설악산에서 동계훈련을 하다가 숨진 최수남, 송준송, 전재운의 사진을 만년설에 묻었다.

고상돈은 산에서 태어난 사나이였다. 한라산을 품은 제주는 그가 산악인의 꿈을 키우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거리를 지나가다가 옆 동네 친구들과 싸움을 붙었다고 한다. 한창 싸움을 하다 도망쳤는데 하필이면 그게 한라산 쪽이었다. 쫓아오는 사람이 없자 주변을 둘러보는데 구름에 둘러싸인 한라산이 눈에 들어오자 신비감에 휩싸여 꼭대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솟아났다. 산악인 고상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금의환향한 고상돈은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으며 국민 영웅이 됐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으로 참여했던 김병준 대한산악연맹 전문위원은 14일 본보와 통화에서 “귀국했을 땐 정말 떠들썩했죠. 한국이 그 땐 가난했고, 7,000m급을 등반한 적도 없는데, 바로 최고봉에 올랐으니 많은 환영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고상돈의 머리 속에는 오로지 다음 등정 계획뿐이었다. ‘꿈을 이뤘으니 이제는 산보다 가정에 충실 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도 소용 없었다. 에베레스트 등정 2년 뒤인 1979년, “이번이 마지막 원정”이라며 고상돈은 북미 최고봉 매킨리 등정길에 나선다. 부인 이희수씨는 3개월 된 뱃속 아기와 함께 매일 불공을 드리며 남편의 무사생환을 기원했다.

‘정상의 사나이 산에서 지다’ 매킨리 사고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1979년 6월 1일자
‘정상의 사나이 산에서 지다’ 매킨리 사고 소식을 보도한 한국일보 1979년 6월 1일자

1979년 5월 29일 박훈규, 이일교 대원과 함께 마지막 캠프를 출발한 고상돈은 에베레스트 이후 북미 최고봉 매킨리를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오르는 원정대의 대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등정 성공 소식을 고국에 채 알리기도 전에, 그는 하산 도중 이일교와 함께 1,000m 아래로 떨어져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미국 원정대에 의해 발견 됐고, 산악인의 꿈을 키웠던 한라산 1,100m고지에 영원히 잠들었다. 세상에 홀로 남은 이희수씨는 유복자 고현정씨를 낳고 양장점을 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고 있다. 산에서 왔다 산으로 간 남편을 가슴에 간직한 채.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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