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오늘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 정상에 올랐다. 대한민국은 세계 8번째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국가가 됐다.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에 이룬 쾌거였다. 결코 쉽지 않았던 고난의 등정 과정을 빛 바랜 사진으로 되돌아 본다.
#1 정상에 서다
붉은 등정복에 산소마스크를 쓴 고상돈 대원이 태극기를 높이 든 사진은 당시 함께 정상에 오른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촬영했다. 역사적인 순간을 담은 컬러필름은 도보와 항로를 통해 네팔 카트만두를 거쳐 인도 캘커타, 태국 방콕, 홍콩을 경유해 7일만에 서울 한국일보 본사로 수송됐다.
사진 속 고상돈 대원 앞쪽으로 1975년 중국 원정대가 세운 국기의 부러진 깃대와 셰르파의 것으로 보이는 배낭이 보인다. 당시 고상돈 대원은 1평 남짓한 정상에서 약 1시간가량 머물렀다.
#2 훈련 도중 대원 3명 사망
정상 정복의 영광 이전에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전문 산악인이라기보다 ‘동호인’에 가까웠다. 때문에 지리산과 설악산, 오대산 등지에서 특수훈련을 받으며 에베레스트의 극한 환경을 이겨낼 체력과 정신력을 키워야 했다. 그러던 중 1976년 설악산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인해 최수남, 송준송, 전재운 대원이 숨지고 말았다. 1년 후 세 대원들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고상돈 대원은 그 곳에 그들의 사진을 묻었다.
#3 등정 준비
원정대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 준비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장비와 의류, 식량 등을 확보하기 위해 예산이 필요했고 수 차례 정찰 등정도 필요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원정대는 마침내 1977년 6월 16일 선발대 파견을 시작으로 100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4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다
에베레스트 정상 1차 공격조는 실패했다. 박상열 부대장이 정상을 불과 100m 앞 둔 지점에서 탈진하고 만 것이다. 통신마저 두절된 상황에서 제5 캠프를 찾아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긴 했으나 이미 가져간 산소통을 다 써버린 후였다. 다행히 프랑스 원정대가 두고 간 산소통 12개를 발견한 덕분에 2차 공격조인 고상돈 대원이 정상 등정에 도전할 수 있었다.
#5 아이스 폴 이어진 고난의 길
당시 사우스콜을 경유해 남동릉 루트를 택한 원정대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선 거대한 ‘아이스 폴(Ice fall) 지대를 통과해야 했다. ‘아이스 폴’이란 빙하가 산의 급경사면을 흘러내리거나 꺾일 때 갈라지면서 폭포와 비슷한 상태로 변하는 것을 말하는데 크고 작은 크레바스와 빙탑이 도처에 생겨 매우 위험한 난코스로 알려져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사다리는 수백m 깊이의 크레바스를 건너기 위한 장비다.
#6 베이스캠프에서
최고봉이 바라다 보이는 베이스캠프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정상 정복과 무사귀환을 바라던 대원들은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향수에 젖기도 했다.
#7 금의환향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한 원정대는 1977년 10월 6일 김포공항을 통해 개선했다. 설원의 태양에 그을린 얼굴과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그대로 돌아온 원정대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한국일보 자료사진•DB컨텐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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