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업자들 공정위에 신고
“코스틸, 원재료ㆍ완제품 시장 장악
경쟁사 고사 목적 상품 염가 판매”
코스틸 “시장 원리 따른 하락”
“수요에 비해 공급이 2배나 많아
싸게 판다고 부당염매 해당 안돼”
공정위서 곧 조사…판단 주목
터널 벽면이나 교량 콘크리트에는 ‘강섬유’(Steel fiber)라는 얇은 철선이 들어간다. 쉽게 금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보완재다. 최근 이런 강섬유 시장에서 연간 매출액 수천억원대의 ‘골리앗’과 매출 수십억원대 영세업체들의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영세업체들은 원재료와 완제품 시장을 동시에 장악한 ‘슈퍼갑(甲)’이 가격을 후려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란 반론도 나온다. 공정위의 판단이 주목된다.
14일 철강업계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강섬유를 제조ㆍ판매하는 9개 업체로 구성된 ‘한국강섬유공업협동조합’은 최근 중견 철강업체 코스틸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다. 조합 관계자는 “코스틸이 경쟁사를 고사시킬 목적으로 제조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강섬유를 ‘덤핑’하고 있다”며 “이는 부당한 염가 판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법은 ‘공급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해 경쟁 사업자를 배제시킬 우려가 있는 행위’(부당염매)를 금하고 있다.
강섬유의 원재료는 ‘연강선재’(5.5㎜철선)다. 강섬유 제조사들은 연강선재를 가공해 강섬유를 생산한 후 이를 건설사에 납품한다. 원래 코스틸(지난해 매출액 2,188억원)은 연강선재를 강섬유 업체에 독점 공급하던 회사였다. 그런데 2011년 당시 강섬유 시장 1위 업체인 ‘스틸화이버코리아’를 인수하며 ‘원재료(연강선재)→완제품(강섬유)’ 시장을 동시에 장악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이후 코스틸의 강섬유 덤핑이 본격화했다.
조합은 코스틸이 강섬유를 원가보다 낮은 ㎏당 900원대에 판매하는 것은 다른 업체들을 죽이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홍성억 에스엠코리아 대표는 “지난달 협력 건설사에서 ‘코스틸이 ㎏당 940원을 제시해 공급 업체를 변경하기로 했다’고 통보해 왔다”며 “강섬유의 원재료값(㎏당 780원)을 감안하면 코스틸의 판매가는 덤핑 외엔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수 케이원스틸 대표는 “코스틸의 가격 후려치기에 기존 거래처를 모두 빼앗겨 월 매출이 3억원대에서 이제 ‘0원’으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조합이 한국산업경제연구소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강섬유의 제조원가(원재료+노무비)는 ㎏당 1,076원, 판매원가(제조원가+판매관리비)는 1,250원이다.
조합은 코스틸이 ‘덤핑→시장점유율 상승 및 영세업체 퇴출→시장 내 독점적 지위 확보→가격 인상’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코스틸은 저가 전략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틸은 지난해 조합에 보낸 공문에서 “강섬유 시장은 수요에 비해 공급능력이 2배에 이를 정도로 과잉”이라며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공정위의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에 따르면 ‘수요보다 공급이 현저히 많아 이를 반영해 염매로 판매하는 경우’는 부당한 염가 판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윤만진 금강스틸 대표는 “코스틸은 원재료(연강선재) 시장도 독과점하고 있어 완제품(강섬유)에서 적자를 봐도 견딜 수 있지만 다른 영세 업체들은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은 이제 공정위로 넘어갔다. 부당염매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상품을 공급하는 행위가 염매(원가 이하 판매)에 해당하고 이 같은 염매 행위가 실제로 경쟁 사업자를 배제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 법원의 잣대는 엄격했다. 2001년 대법원은 현대정보기술이 인천 정보화 시스템통합 용역 입찰에서 예정가격(9,724만원)의 2.98%(290만원)로 응찰해 낙찰 받은 사건에 대해 “부당염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염가판매의 의도, 기간 및 반복계속성 ▦행위자의 시장지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부당염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무조건 싸게 판다고 부당염매라고 볼 수도 없다. 기술 혁신 등을 통해 가격이 내려갈 수도 있다. 한편 코스틸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면 성실히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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