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에 이곳에서 만났는데 여기서 또 만나네요.”
14일 시인 이상(1910~1937)의 집터에서 소설가 김연수(47)와 극작가 오세혁(36)이 만났다. 문화공간인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다. 서울예술단이 21일부터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꾿빠이, 이상’이 연이 됐다. 2001년 나온 김 작가의 동명 소설은 오 작가의 각색으로 창작가무극(뮤지컬)으로 재탄생했다. 김 작가의 장편소설이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다.
소설은 일본 도쿄대학 부속 병원 유학생들이 만든 이상의 데드마스크(죽은 사람 얼굴을 석고 등으로 형을 뜬 것)가 사라져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는 데서 착안했다. 원작은 잡지사 기자 김연화와 아마추어 이상 연구자 서혁민, 재미교포 이상 연구자 피터 주의 시점에서 데드마스크를 좇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뮤지컬에선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두 작가에게 시인 이상은 무슨 의미인지 얘기를 들어 봤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김연수(김)=“이곳 이상의 집에서 매년 이상 시인의 기일에 맞춰 예술가들이 이상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2015년 연극계 대표로 오 작가가 참석했을 때 처음 봤다. 그날 이후 오늘 처음 만났다.”
오세혁(오)=“2015년 당시 지인 13명에게 전화해 ‘이상이 누군지 말해달라’고 했다. 천재, 미친 사람, 병균 같은 사람, 나 자신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온 게 흥미로워 이상에 대한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서울예술단에서 김 작가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고 하기에 기쁘게 참여했다. 원래 김 작가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공연으로 만들고 싶었다. 언젠가 허락해 주면 좋겠다.”

소설을 가무극으로 옮길 때 우려된 점이나, 실제 어려웠던 점은.
김=“스토리의 틀에 갇히지 않고 형식이 만개하는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대로 옮겨지길 바란 장면 두 개가 있다. 서현민이 도쿄대 부속 병원에 갔다 죽은 이상의 환상을 보는 장면, 그리고 이상이 죽을 당시 유학생들이 모여 얼굴에 데드마스크를 뜨는 장면이다. 오 작가에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대본을 받아보니 그 장면이 들어있더라.”
오=“이상이라는 사람이 신화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번 작품도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명확한 방향을 잡으니 뭔가 안 맞는 느낌이 났다. 작업 과정에서 무용이 영감을 많이 줬다. 작품이 뮤지컬로 소개 되고 있긴 하지만, 노래, 무용, 대사의 비중을 따지자면 ‘무가극’ 정도가 적당하다. 각색 제안을 받았을 때 특정 배우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모든 배우가 동등하게 보이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소설 속 3명의 화자가 공연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바뀌는데.
오=“소설을 읽으며 ‘죽은 이상에게 영혼이 있다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수많은 사람이 자기 얼굴을 기억하지 않을까, 이상은 그런 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얼굴 얘기를 하고 싶었다.”
김=“재미있는 얘기다. 소설에서는 화자들이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 물어보는 과정에서 이상이 힌트를 주는 존재였다. 나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글을 썼고, 오세혁 작가는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글을 썼다. 소설은 이상을 규정할 수 없어 1인칭이 아닌 3인칭을 썼다.”
두 사람에게 이상의 의미는?
김=“이상의 작품을 보고 ‘문학은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다’는 전제를 버렸다. ‘이해하지 못하는 문학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도전을 불러일으켰다. 이상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인생의 모습을 처음 보여준 사람, 그런 게 문학이라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다. 이상의 수필은 그 시대에 제일 잘 쓴 글이다. 수필은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낸 김해경(이상의 본명)이 썼고, 소설은 김해경과 이상의 공동 집필한 것이고, 시는 이상이 쓴 것이다.”
오=“이상의 ‘권태’를 읽으며 인생이 권태로워지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상을 읽는다는 건 이상 문학을 읽는 것인 동시에 이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정신을 읽는 것이다.”

김연수 작가가 직접 각색할 생각은 없었나.
김=”소설과 영화, 연극은 확실히 다른 장르라 그런 생각은 못했다. 그런데 ‘밤은 노래한다’는 소설로 쓰기에 한계가 있었기에 극으로 각색하고 싶었다. 내부자의 시선에서 소설을 쓰는 건 어려운데 극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다. 오 작가도 각색하고 싶다고 했으니 경쟁자다(웃음).”
오=“그럼 제가 연출을 하겠다(웃음).”
공연을 통해 전하고 싶은 바는?
김="정체성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얘기가 전달되기 바란다. 공연을 보고 소설적 스토리를 더 즐기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원작 소설이 가이드가 될 것이다."
오=“관객이 무엇인가를 꼭 규정할 필요는 없다. 얼굴이 여러 개여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가면 좋겠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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