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지난 13일 경기 과천시 동네책방 타샤의 책방에서 열린 독자와의 대화에서 김승옥이 느낀 소회다. 2003년 뇌졸중으로 언어능력을 잃은 그는 빈 종이 한 켠에 ‘좋다’라는 글자를 꾹꾹 눌러쓰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독자와의 만남이 처음이라던 작가는 단 두 글자 안에 많은 의미를 담은 듯한 표정이었다.
1960년대 문단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었던 노작가의 위세가 아직도 그대로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행사 시작 전부터 서점은 붐볐다. 임신부도 있었고, 엄마 손을 잡고 찾아온 꼬마도 있었다. 30명 내외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50여 명의 사람들로 꽉 찼지만, 김승옥을 만난다는 기대에 찬 참가자들은 불편함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대구에서 온 허모씨(28)는 “처음 (참가) 신청을 했을 때 대기번호를 받았다”며 “나중에 올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번 작가와의 대화는 민음사가 동네서점 판매 전용 출간 기획인 ‘쏜살문고 동네서점 에디션’으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재출간하면서 비롯됐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임지연 책문화연구소 소장은 지난 7월 동네서점 전용 ‘무진기행’ 출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임 소장은 “타샤의 책방에 파견을 나와서 동네책방을 활성화할 고민을 하고 있었다”며 “한 공간에 김승옥 작가와 독자들, 예술인까지 모두 모여서 문학적‧예술적 감성을 공유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이날 오랜 만에 만난 독자들에게 근황을 알렸다. 그는 “2003년 2월 뇌졸중으로 말과 글을 잃었다”며 “그 이후 소설은 못 쓰지만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는 “작년에는 (서울) 혜화동에서 그림 전시회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감수성 짙은 문체로 한국 소설의 새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된다.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 연습’으로 등단한 뒤,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등을 발표하며 국내 산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이날 ‘무진기행’ 낭독극을 들으며 잠깐씩 고개를 떨군 채 감상에 빠졌다. 방문객들이 가져온 책에는 일일이 사인을 하며 감사를 표했다.
현지호 인턴기자(성균관대 경영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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