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평화가 아닌 제재, 핵 담론이 지배하는 세상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북한의 6차 핵실험이 ICBM 화성-14형 장착용 수소탄 시험이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쉽게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전술핵을 도입하거나, 핵무장을 해서라도 공포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원유를 중단해서라도 북한 경제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금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5,000만 국민이 핵 인질에서 벗어나려면, ‘전술핵 재배치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은 ‘너무 나간 것’으로 읽힌다. 근본적 해법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시적으로 심리적 안정효과를 가져다 줄 수는 있겠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킬까 걱정이다. 전술핵을 배치하는 게 쉽지도 않는 데다, 설령 어렵사리 배치하더라도 전술핵은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북한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남한에 새로운 무기가 배치되면 이를 무력화할 더 새로운 전략무기체계를 개발하는데 올인해 왔고 그 동안 나름대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북한은 핵잠수함, 스텔스폭격기, 이지스함 등 미군의 전략자산들을 매우 두려워했다. 이제는 달라졌다. 북한은 그 동안 이 전략자산들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그들 식의 전략무기체계를 만드는 데 힘써왔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3.14)은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 “핵 항공모함을 비롯한 미제의 모든 전략자산은 우리 군대의 강력한 초정밀 타격수단의 조준경 안에 들어있다”며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우리 군대의 초정밀타격이 지상과 공중, 해상과 수중에서 무자비하게 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위협을 허세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북한 매체들은 연일 수소탄을 비롯해 이동식 발사대를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SLBM 등 다양한 미사일을 보유한 군사대국이 되었다고 과시한다. 나아가 미국의 제재를 위시한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핵무력을 지속적으로 증강시키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을 군사력 증강에 역이용하고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당장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9월 11일 새로운 대북제재가 가해질 경우 “우리가 취하게 될 다음 번 조치는 미국으로 하여금 사상 유례 없는 곤혹을 치르게 만들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북한은 공언대로 조만간 새로운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그러면 국제사회는 더 강도 높은 제재를 부과할 것이다. 악순환이다. 한반도에의 핵무기 도입을 통한 공포의 균형은 우리에게만 공포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정권의 목표는 악독하지만 간명하다. 제재압박에 굴복하지 않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올바른 선택을 할 때까지 괴롭히겠다는 것이다. 적반하장이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을 이처럼 대담하게 만든 것도 미국의 전략적 인내 혹은 강경 일변도 정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도 이제는 일방적으로 북한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자신도 적잖은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기존 경로 의존형 접근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한반도는 그야말로 핵전쟁의 화약고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석유수입을 금지한 조치가 태평양전쟁을 발발시킨 주요 원인이었다는 일부 주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국제사회의 일치된 의견을 반영한 유엔 안보리 제재는 이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다시는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 핵심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단기적 제재 압박만으로는 김정은 정권의 핵야욕을 재고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보다 실효적 대북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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