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유로권 싸게 판다”며 피해자에 투자 권유
음식점 사장 장모(45)씨는 직원으로 부리면서 알게 된 이모(30)씨에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건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솔깃했다. 이씨가 소개해 준 환전업자 오모(44)씨는 “내년부터 500유로 지폐 발행이 중단된다는 소식에 급매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이탈리아 보석 세공사에게 가면 환율(유로당 약 1,300원)보다 싼 가격(유로당 1,000원)에 살 수 있다”고 했다. “마카오에서 500유로를 홍콩달러로 싸게 산 적이 있다”고 돈다발을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거래를 위한) 보증금으로 2만유로를 걸어뒀다”는 둥 그럴 듯한 말도 덧붙였다. 몇 달을 고민한 장씨는 “의심스러우면 이탈리아에 같이 데려가 보여주겠다”는 제안에 결국 투자를 결심했다.
거래는 6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한 호텔 방에서 이뤄졌다. 유로 지폐를 가져온 이탈리아인들은 장씨가 위폐감별기로 진짜 돈인지 확인하고 일일이 서명까지 받은 뒤에야 돈을 가방에 넣어 건네줬다. ‘정상적’으로 거래를 마쳤다고 여긴 장씨는 곧바로 사촌 형에게 전화해 오씨가 일러준 대로 한국에 있는 네덜란드인 A(27)씨에게 현금 19억원을 보내도록 했다.
숙소에 혼자 돌아온 장씨는 화들짝 놀랐다. 진짜 돈이라는 걸 분명 확인했는데, 가방 안에는 눈으로 봐도 가짜인 게 확연한 위조지폐가 가득했다. 지폐를 가방에 넣으면서 오씨와 이탈리아인들이 바꿔치기했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된 장씨는 사촌 형에게 연락, 한국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A씨에게 돈 일부를 건네 받은 세르비아인 B(41)씨를 명동 한 호텔에서 검거, 9억6,000만원을 압수했다고 13일 밝혔다. 귀국한 오씨와 공범 김모(30)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공범 이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돈을 받고 달아난 네덜란드인 A씨에 대해서는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이탈리아인 3명에 대해선 현지 경찰에 공조 수사를 각각 요청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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