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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혹독한 법이 능사일까

입력
2017.09.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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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과거의 행위를 용서하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라는 카뮈의 말이 빠르게 퍼졌다. 이 문장을 공유한 사람들은 카뮈가 대독협력자 처벌을 일관되게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카뮈는 대독협력자 처벌이 승자들의 편의적인 권력행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원래 입장을 깨끗이 철회했다.

정오의 해는 하늘 복판에 떠있다. 카뮈는 정오의 해처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과 화해를 추구했다. ‘정오의 사상’으로 불린 그의 신념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해방투쟁 국면에 다시 천명되었다.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 모두가 나치 하의 프랑스를 기억하면서 알제리의 독립을 당연시 했던 반면, 카뮈는 알제리의 독립보다 알제리가 프랑스연방의 일원이 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어떤 사안에서든 래디컬을 추구했던 사르트르에게 카뮈는 순진ㆍ소박한 촌놈이었다.

하지만 ‘단두대에 대한 성찰’(책세상, 2004년)을 쓴 카뮈는 그렇지 않았다. 사형 제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형이 존속해야 될 가장 큰 이유로 범죄 억지력을 꼽는다. 하지만 카뮈는 범죄와 사형제도는 서로 다른 범주라고 말한다. 극형에 처해질 범죄는 충동의 영역이고, 사형제도는 이성의 영역이다. 사형제 지지자들은 범죄 앞에 공시된 사형제도가 범죄자의 충동을 방지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형제도(이성)에 겁을 먹고 범죄(충동)를 억누르는 사람은 애초부터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소심한 사람들뿐이다. 충동에 휘둘린 범죄자가 사형제도를 의식할 때는 범죄를 저지르고 재판을 받을 때이다. 사형제는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다.

카뮈는 이 책에서 인간에게는 “스스로 죽고 싶은 욕구 혹은 자신을 무화(無化)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서, 이 “괴이한 욕구”에 홀리게 되면 “장차 사형을 받게 된다는 전망 따위로는 범인의 행동을 만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전망이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그의 현기증 나는 욕구를 배가시킬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범죄 억제책이라는 사형제도가 오히려 범죄자의 충동을 불러낸다는 것이다. 이때의 카뮈는 지젝의 눈으로 발견된 카뮈이자, 지젝보다 늦게 온 지젝이다.

인간은 사회화와 문명화를 통해 충동을 길들이려고 했지만 인류 역사는 ‘이성<충동’이라는 부등식을 바꾸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시도해볼 해결책은 법적 절차를 건너뛰고 충동으로 하여금 충동을 제압하는 전략이다. 이 해결책은 1971년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영화 ‘더티 해리(Dirty Harry)’를 충실하게 참조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형사 해리 캘러한(클린트 이스트우드)은 범죄자들을 체포하여 법원에 넘기지 않고, 매그넘44 권총으로 즉결 처분해버린다. 힘들여 법원에 넘겨봤자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 달아나거나 교도소에서 세금만 축내기 때문이다. 영화 관객도 국민도 이런 해결을 반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지난해 6월 말 필리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고, 경찰과 자경단은 지금까지 8천 명 이상의 마약 용의자를 현장 사살했다. 이웃한 인도네시아도 두테르테를 따라하면서 올해에만 55명의 마약 용의자를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현장 사살했다.

‘더티 해리’의 한국 상영 제목은 ‘이것이 법이다’였다. 원제와 한국어 제목을 조합하면 ‘더러운 법’이 된다. 카뮈가 사형 제도에서 야만(살인)으로 유지되는 문명을 간파했듯이, 저처럼 역설적인 단어의 조합은 법 또한 이성이 아니라 제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끓어 넘치는 충동의 영역이라고 말해준다. 지난 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시작된 소년법 폐지 국민 청원에 26만 명 넘게 서명을 했다. 소년법 폐지와 두테르테가 지시한 즉결 처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나. 소년법은 아직 성인이 못된 연령의 비행 청소년을 그 연령에 맞게 교화하자는 데 뜻이 있지, 결코 처벌을 면해주는 법이 아니다. 소년법이 그렇게 물렁하지 않다는 것을, 공범과 함께 흉기를 든 폭행사건을 저지르고 소년원에 1년 6개월 동안 재원했던 내가 증언할 수 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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