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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멋진 모습은 계속 변한다

입력
2017.09.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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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모델은 말라야 하는 편견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패션 모델은 말라야 하는 편견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LVMH와 케링이 합동으로 새로운 모델 가이드를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앞으로 프랑스 사이즈로 여성은 34(한국 사이즈로 44정도) 이상이어야 캣워크에 서거나 광고 모델로 기용될 수 있다. 남성의 경우도 44(한국 사이즈로 85) 이상으로 하한선이 정해졌다. 이 기준은 프랑스 정부가 올해부터 적용하는 규정보다 더 엄격하다.

LVMH는 자회사로 셀린느, 지방시, 루이 비통, 마크 제이콥스 등을 거느리고 있고 케링은 구찌와 발렌시아가, 이브 생 로랑 등 유수의 브랜드들을 가지고 있다. 이번 합동 가이드 라인은 저 브랜드들이 패션쇼와 광고를 하는 나라가 어디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가 단위의 규제안보다 적용 범위가 넓은 셈이다.

합동 가이드 라인은 모델의 나이 규정을 더욱 강화했고 전문 심리 상담사의 고용이나 두 회사가 함께 운영하는 감시 위원회 설치 등도 포함하고 있다. 합동 가이드 라인은 2007년 거식증으로 숨진 모델 이사벨 카로 사건과 최근 몇 년간 모델 캐스팅 과정에서 드러난 비인권적 행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면서 만들어졌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데 깡마른 모델들이 고급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등장할 리는 없다. 패션 브랜드는 이상적인 모습을 상정하고 사람들이 그걸 동경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좀 잘생기고 예쁜 남자와 여자였겠지만 시간이 흘러가며 그 이상형은 몸의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따지며 점점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이는 하이 패션 만의 특별함으로 포장된다. 어느덧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신체 이미지에 계속 노출되면서 자기비하와 낮은 자존감에 빠지고 건강을 해치는 게 사회 문제가 되었다.

LVMH와 케링의 발표는 패션쇼 뿐만 아니라 광고 이미지 등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근 패션 광고는 여러 가지 규제에 직면해 있다. 너무 마른 몸 뿐만 아니라 너무 어린 나이, 왜곡된 성적 묘사 등도 금지되는 추세다. 영국은 전통적인 성 역할을 조장하는 광고를 금지하기로 했다. 패션 광고가 지닌 이미지의 강력한 힘을 실감했고 이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치를 하면 기존 권력 관계를 강화하고 차별을 영속화시킨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규제는 지금 사회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특히 성 역할이나 인종 등 다양성 문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사고 방식도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거나 왜곡된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는 많은 비난에 직면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사회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 기반에는 타인의 인정과 동등함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멋진 모습의 의미가 재구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이 패션 브랜드는 이제 훨씬 새로운 기준을 사람들에게 제시해야 할 때다. 사실 최근 몇 년 간 여러 브랜드들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대거 교체하고, 젠더리스(성 구분 없는) 패션과 페미니즘, 남성의 육아와 인종 다양성 같은 주제를 캣워크 위로 가져왔다.

이왕 변할 거라면, 심지어 더 나은 미래라면 맨 앞에서 주도하는 게 낫다. 자기가 뭘 하는 지, 내놓는 게 어떤 흐름에 있는지 명확히 인식해야 할 시기다. 흐름을 제대로 포착하고 그게 만들어 낼 새로운 “멋진 모습”을 제시해 낼 수 있는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지금의 하이 패션의 구도와 트렌드를 재편성할 가능성이 높다.

3일 뉴욕에서 내년 봄, 여름 패션을 선보이는 패션위크가 시작됐다. 내달 초까지 한 달 동안 런던, 밀라노, 파리로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누군가는 핵심을 짚으며 새로운 미래상을 보여줄 거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수명이 다한 패셔너블함을 나열할 것이다. 이번 패션위크가 중요하고 더욱 흥미진진한 이유다.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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