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낙마 이어 또 충격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 등
주요 선고 줄줄이 미뤄져
김이수(64)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지난 1월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이후 8개월 넘게 수장 공백 상태가 이어지게 돼 헌재가 혼란에 빠졌다. 정치적으로 독립돼야 할 헌법 기관이 정치권 이해관계로 표류하게 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헌법소원 사건 심리에도 큰 지장을 받게 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헌재는 11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헌재는 박 전 소장의 퇴임 이후 ‘소장 부재’와 ‘8인 재판관 체제’라는 이중고를 겪어왔다. 지난 5월 김 후보자가 지명된 이후 임명절차가 늦춰지고 있었지만, 8월엔 대통령 몫으로 이유정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에 추천되면서 최소한 ‘9인 체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주식투기와 내부자거래 의혹으로 자진 하차한데다 김 후보자 마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헌재는 당분간 정상기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소장 공백 사태와 8인 체제 운영이 계속되면서 계류중인 굵직한 사건 선고가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 지난해 말 심리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진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시작되는 바람에 선고가 보류됐다. 게다가 박 전 소장 등 재판관 2명이 올 초 퇴임하면서 재판부 지형이 바뀌어 재심리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사실상 선고가 1년 이상 늦춰지는 셈이다. 지난해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ㆍ일 위안부 합의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과 마찬가지로 작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가 입주업체들의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제기된 헌법소원 등 정치ㆍ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사건들에 대한 결정이 줄줄이 늦춰지고 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의 성격상 헌재 소장을 포함해 재판관 9명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결론을 내려야 할 사건이라는 게 법조계 공통된 인식이다.
더욱이 대통령 탄핵결정 이후 한껏 높아진 위상 때문에 헌재 결정을 바라는 헌법소원이 올해 상반기에만 1,350건이 접수됐다. 헌재 창설 후 상반기 접수 건수로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 추세라면 올해 사상 처음으로 2,000건 넘는 사건이 접수될 가능성이 크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독립성과 다양성이 보장돼야 할 헌법재판소가 정치논리에 휘둘려 정치ㆍ사회 갈등을 정리하는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국가적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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