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의 두 창당 주역인 김무성ㆍ유승민 의원이 또 충돌했다. ‘유승민 비상대책위’를 두고서다. 김 의원이 전날 의원단 만찬에서 강하게 제동을 걸자 유 의원도 11일 “당헌ㆍ당규대로 하자”며 맞섰다. 만찬에서 김 의원은 “사당화 우려가 있다”며 결정적인 때마다 유 의원 면전에서 반론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이 부글부글하면서 내홍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만찬 초반 ‘러브샷’에 입맞춤하더니
유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전날 만찬에서 ‘유승민 비대위’ 합의가 무산된 것을 두고 “그렇다면 당헌ㆍ당규대로 전당대회를 치르면 된다”고 말했다. 당헌ㆍ당규에 따르면, 대표의 궐위시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을 승계하되 한달 내에 전대를 열어 새 대표를 선출하게 돼있다. 정기국회가 시작된 시점에 경선을 통해 새 대표를 뽑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한다는 게 당내 다수의 의견이다.
반면, 김무성 의원 등 일부는 ‘유승민 비대위’를 강하게 우려하며 정기국회 기간을 포함해 한동안 주 원내대표의 권한대행 체제로 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유 의원도 ‘원칙’을 명분으로 대항하기로 한 것이다.
김무성ㆍ유승민 두 의원 간 마찰은 전날 만찬에서 예고됐다. 오후 7시부터 2시간 50분 가량 이어진 식사 중 초반은 화기애애했다. 당의 단합을 기원하는 건배사가 10여 차례 문밖으로 새어 나올 정도였다. 김 의원은 고량주를 가져와 의원들에게 일일이 따라주기도 했다. 옛 새누리당 시절부터 갈등설에 휘말려온 김무성ㆍ유승민 의원도 ‘러브샷’을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주호영 원내대표ㆍ정운천 최고위원 등 주위의 독려에 못이기는 척 입을 맞추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유 의원은 만찬 도중 나와 대기중인 기자들에게 “(비대위원장을 맡으라는) 합의가 충분히 되면 저도 각오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하고 있다”며 “다만 의결 절차가 남아있으니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결심을 내비치기도 했다.
면전서 “유승민 사당 안돼” 주장한 김무성
이런 분위기는 오후 8시45분쯤 김 의원이 “(앞서 있었던) 최고위원회의의 논의 내용을 들어 보자”고 하면서 반전됐다. 사실상 ‘유승민 비대위원장 체제’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설명에, 김 의원은 “지금 최고위원들이 다 유승민 사람들 아니냐”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유승민 비대위’로 결론 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 해석됐다. 이에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유승민캠프를 총괄했던 진수희 최고위원이 “말씀이 과하시다”며 반박에 나섰다. “선출직 최고위원 외의 최고위원들도 정당한 논의 과정을 거쳐 임명된 사람들”이라는 취지였다. 한 참석 의원은 “그런데도 김 의원은 ‘당원들도 ‘유심초’(유 의원 팬클럽)가 태반이라며 ‘새누리당 때는 박근혜 사당으로 문제였는데 바른정당도 또다시 유승민 사당으로 갈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표 권한대행을 맡아 이끄는 게 맞다”며 “의원총회에서 결론을 내자”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에 비판적인 이종구 의원도 나섰다. 이 의원은 유 의원이 페이스북에 쓴 글을 언급하며 “이혜훈 의원의 개인 비리인데 왜 당이 죽음의 계곡에 있느냐”고 몰아붙였다. 이 의원은 “다 함께 빠져 죽자는 얘기냐”고 조롱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의원은 페북에 “동지들과 함께 ‘죽음의 계곡’을 건너겠다”며 자신의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유 의원이 자유한국당과 통합론에 선을 그은 것을 두고 “내년 지방선거를 어떻게 치르려고 그러느냐”는 비난도 나왔다.
일부 의원들 “김 의원 주장 모욕적… 부끄러운 민낯”
그러자 박인숙ㆍ지상욱 의원이 나서서 반발했다. 박 의원은 “대선 패배 넉 달 만에 당의 간판으로 나서는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지 의원도 “박근혜ㆍ최순실의 국정농단도 개인의 비리이고 우리가 몰랐으니 책임 없다고 할 것이냐”며 “이 위기에 비대위 체제로 환골탈태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의원은 “유 의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묵묵히 이 같은 논쟁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분란은 일회성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의원은 “내가 믿는 가치대로 정치를 하려고 바른정당에 참여했는데 누구 사람이라느니, 누구의 사당이라느니 하는 말에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런 이들과 함께 당을 해야 하는 건지 회의가 든다”고도 했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개혁보수라는 신념을 좇아 온 의원들과, 반기문(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만들려고 온 의원들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의 태생적 한계이자 부끄러운 민낯”이라고 지적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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