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정부, 구호단체에 ‘반군 지지자’ 딱지
미얀마 북서부 라카인주 시트웨 외곽에는 12만~14만명으로 추산되는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 국내피난민이 산다. 2012년 로힝야족과 이 지역 불교도 간 충돌이 대로힝야 학살로 비화되면서 도심에서 쫓겨난 이들의 게토인 셈이다. 당시 16세의 나이로 시트웨 나지 구역에서 학살 현장을 목격한 라피크(가명)는 승려들이 폭도들에게 방화용 휘발유를 열심히 날라주던 장면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는 “모두 칼 아니면 긴 막대기 하나씩 차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제 스물한살의 가장이자 사회 활동가로 자란 라피크는 4일(현지시간) 필자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초부터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 캠프 내 구호활동을 제약하기 시작했다”며 “25일 이후로는 캠프 안으로 쌀 한톨, 의약품 한알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쌀 지급이 중단되면서 시장에서의 쌀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현재 열악한 건 식량만이 아니다. 같은날 의료진의 발길이 끊기면서 로힝야족은 생명에 더욱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라피크가 4일 통화 당시 지목한 위험 환자는 벌레가 피부 속을 파고들어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난 랄 바누(33), 원인 미상으로 순식간에 상태가 악화된 임산부 로 쉬다(35) 등 2명이었다. 하지만 이틀 후인 6일 두 여성과 쉬다 뱃속의 태아 모두 결국 숨을 거뒀다.
최근 로힝야족 무장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과 대치 중인 미얀마 정부가 군사작전지역으로 선포한 곳도 아닌 시트웨에서 대체 왜 이렇게 전방위적인 구호 중단 사태가 일어났을까. 얼핏 보면 구호 단체들의 철수는 지난달 25일 ARSA의 군경 초소 공격으로 인한 것처럼 보인다. 사건 이후 국제 구호기구 직원들이 일제히 ‘안전’을 이유로 로힝야족 거주지를 떠나서다. 또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경우 양측 긴장이 고조되던 7월 중순부터 정부에 의해 구호 지역에 대한 접근을 차단 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들의 대피 이면에는 적극적으로 위협적인 환경을 조성해 온 미얀마 정부의 선전전이 자리잡고 있다. 앞서 7월 30일 미얀마 관영 언론을 통해 현지에 확산된 로힝야족 반군 캠프 사진에는 마치 우연인 듯 세계식량계획의 표식이 새겨진 식량이 담겼다.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 사무소는 이후 반복적으로 “유엔과 외국인 구호단체가 ‘테러리스트(로힝야족 반군 지칭)’를 돕는다”는 성명을 배포했다. 불교민족주의에 기반한 반(反)로힝야 정서가 강한 라카인주에서 일반 주민들이 보인 반응은 예상하는 대로다. 불교도 주민들이 ‘국제구호단체=로힝야족 지지’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시간 문제. 곧이어 구호 인력의 안전 문제까지 점차 거론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WFP는 이 로힝야족 반군 지원 사실을 부인하기에 이르렀고 이튿날에는 16개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종족, 종교, 인종에 관계없이 구호가 필요한 이들에게 물자를 배분해왔다”고 반박하기까지 했다.
정부의 이 같은 교묘한 전략에는 저 타이 수치 국가자문역 사무소 대변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타이 대변인이 과거 군부 독재 시절 승승장구했던 군인 출신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수치 정권이 군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란 요원해 보인다. 수많은 미얀마인들은 오늘도 정부의 선전전에 담긴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흡수하며 로힝야족 학살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로힝야족은 정부의 군사 작전만큼이나 거대한 전쟁인 선전전과 싸우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