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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중] 주민투표로 독립 꿈꾸는 세계 최대 ‘소수민족’ 쿠르드족

입력
2017.09.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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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자치정부 “25일 실시”

자국 영토 일부 잃을 이라크

“對 IS전에 변화” 우려하는 미국

자국 내 쿠르드족 동요 불안한

터키ㆍ이란 등 관련국 모두 반대

한 쿠르드족 아이가 헬리콥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쿠르디시프로젝트 트위터 캡처
한 쿠르드족 아이가 헬리콥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쿠르디시프로젝트 트위터 캡처

“더 이상 적합한 시점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적기(適期)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소수민족이 누구인지 그 정체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2,500만~4,000만명으로 추산되는 거대 민족이자 고유 언어도 갖고 있지만 변변한 국가 없이 중동 4개국을 중심으로 흩어져 살고 있어 ‘소수민족’인 이들. 소수민족으로 불리면 그나마 다행이고, 무장조직 활동이 활발해 반군 또는 테러리스트 딱지가 더 자주 붙는다. 이러한 쿠르드족이 오는 25일(현지시간) 분리독립을 위해 12년만에 이라크 일부 지역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문제는 쿠르드족 독립 투표를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 또한 없다는 점이다. 당장 영토를 잃을 수 있는 이라크뿐 아니라 자국 쿠르드족의 동요를 우려하는 터키ㆍ이란,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전선 변화를 불안해 하는 미국 모두 일찍이 반대 대오를 갖췄다. 때문에 독립 실현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번 투표가 분리독립 자체보다는 이해 당사국에 대한 협상력 확보를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투표를 실시하는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대변인은 “지금은 아니다”는 외부 반발에 대해 “독립하기 알맞은 시점은 우리가 정한다”는 말로 일갈했으나 투표를 둘러싼 수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5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수도 격인 아르빌에서 두 쿠르드족 남성이 길가에 '쿠르디스탄' 깃발과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EPA 연합뉴스
5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수도 격인 아르빌에서 두 쿠르드족 남성이 길가에 '쿠르디스탄' 깃발과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정치ㆍ경제ㆍ외교 모두 불안…왜 지금인가

이른바 ‘쿠르디스탄(독립시 국가명칭)’ 주민투표를 위한 캠페인이 시작된 5일 투표 예정지역인 이라크 북부에서는 첫날부터 유세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대상 지역은 KRG가 군사ㆍ외교 등 폭넓은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도후크ㆍ아르빌ㆍ술라이마니야 등 3개주와 쿠르드계 주민이 많은 키르쿠크주, 니네베주 일부고, 유권자는 500만여명이다. 현지 매체 루다우에 따르면 수도 격인 아르빌에는 새벽부터 독립 찬성론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마치 독립기념일이라도 된 듯 “9월 25일”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앞서 7월 마수드 바르자니 KRG 수반이 “협박과 위협의 시대는 끝났다. 독립 주민투표는 쿠르드족의 기본권이고 우린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투표 실시를 보장한 데 이어 시민들도 호응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쿠르드 주민의 기대와 자치정부의 강경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KRG의 현 상황은 어느 측면에서나 위태롭다. 우선 바르자니 수반의 좁은 정치적 입지가 최대 걸림돌이다. KRG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인 쿠르드민주당(KDP) 대표로서 2005년 자치정부 수반이 된 바르자니는 지난 2015년 8월 지역 의회가 두번째 임기 연장을 거부했음에도 자의로 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의회는 이후 현재까지 활동을 거부하고 있다. KRG의 군사조직인 페슈메르가 역시 KDP당과 쿠르드애국동맹(PUK)당 계열로 분열돼 충성도가 약하다. 이에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쿠르드족 내부에서도 (정치권) 단합을 이루기 전 독립 추진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거세다”며 “이번 투표를 KDP가 11월 총선을 앞두고 애국심 캠페인을 위해 깔아둔 포석으로 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쿠르드 지역은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불안한 상태다. 페슈메르가는 미국 주도 연합군의 IS 격퇴전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음에도, 자치정부의 예산 부족으로 수개월째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쿠르드 지역에 키르쿠크주 등 유전지대가 집중돼 있긴 하나 송유관을 통제하는 이라크 정부의 대금 미지급, 저유가 위기 등으로 인해 돈줄이 끊겼다. 더욱이 키르쿠크주의 경우 비(非)쿠르드족 주민이 다수 거주하고 있어 아랍계, 투르크만 의원들을 중심으로 투표 거부 운동도 일고 있다.

외교적 고립은 말할 것도 없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모하마드 호세인 이란군 참모총장은 지난달 면담을 갖고 “KRG의 독립투표는 이라크 내 갈등을 유발해 지역 전체에 부정적 결과를 남길 것”이라는 입장을 공유했다고 이란 관영 IRNA통신은 보도했다. 미국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비슷한 시기에 바르자니 수반을 직접 만나 투표 철회를 요청했다. 분쟁 전문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라크 전문가 주스트 힐터만은 “아랍, 투르크만, (이슬람) 시아파 주민들이 (수니파 쿠르드족 독립에) 저항할 것은 자명하고 이라크 정부가 이란의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동원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경고했다.

협상 전략이라면 ‘몸값’ 떨어지기 전 최적기

하지만 현 상황을 종합하면 역설적이게도 지금이 KRG가 투표를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결론이 나온다. 독립투표의 목적이 사실상 국가 건설보다는 미국ㆍ이라크에게 각 경제 원조와 자치권을 추가로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 마련에 있다고 가정할 경우 이번 투표의 동기를 이해하기 한층 쉽다. 이 경우 KRG로서는 가능한 한 협상 카드가 많아야 하는데, 최근 대IS 전투가 점차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KRG도 자신들의 역할이 줄어들까 조급해진 것. IS는 실제 이라크 모술, 시리아 락까 등 주요 거점을 점차 잃으며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다.

마수드 바르자니(왼쪽)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수반이 올해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을 만나 선물을 주고받고 있다. 바르자니 트위터 캡처
마수드 바르자니(왼쪽)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수반이 올해 2월 독일 뮌헨안보회의(MSC)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을 만나 선물을 주고받고 있다. 바르자니 트위터 캡처

최근 KRG 수뇌부와 미국 정부간 잦은 접촉은 이 같은 가정을 더욱 두텁게 만든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미 국방부가 페슈메르가 대원 임금을 위해 KRG에 지원해 온 2,200만달러 상당의 기금이 이번달로 만료된다. 국방부가 올해 4월 약속한 무기 등 3억달러 규모의 지원은 아직 이행도 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군사지원을 투표와 연계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나, 매티스 장관과 조지프 보텔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 등이 지난달에만 두차례 바르자니 수반과 회동한 점으로 보아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일 것이라는 게 포린폴리시 등 여러 외신의 관측이다.

쿠르드 주민들의 계속되는 독립 열망

그럼에도 모든 정세를 차치하고 나면 쿠르드 주민들이 오랜 기간 지녀온 독립 열망이 보인다. 페슈메르가의 IS 격퇴전에 남녀 구분 없이 수많은 쿠르드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쿠르디스탄 아메리카대학교 연구팀의 설문조사(2,339명 대상)에서 페슈메르가 대원의 73%가 참전 목적을 묻는 질문에 “쿠르디스탄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라크를 벗어나 터키ㆍ시리아 등에 걸친 쿠르드족 영토 전체를 수호하기 위해 전투에 임한다는 응답도 88%에 달했다. 연구팀은 외교전문 포린어페어스에 이러한 결과를 밝히며 “쿠르드군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하나로 단합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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