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출항으로 전투태세 못 갖춰
7함대 8척 훈련 인증기간 만료
올해 6월과 8월 연이은 해상 충돌로 사망자 17명을 낸 미국 해군 이지스 구축함 사고가 예고된 인재(人災)임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과도한 작전 수행에 따라 턱없이 부족한 승조원 훈련 시간과 부실한 함정 관리 실태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대대적인 해군력 쇄신 작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6일(현지시간) 미 회계감사원(GAO)이 충돌 사고가 일어난 일본 요코스카(橫須賀) 기지 주둔 구축함ㆍ순양함들의 전투훈련 인증 여부를 조사한 결과(6월 기준) 37%가 인증 기한이 만료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CNN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2015년 1월(7%)과 비교해 5배 이상 높은 수치로, 이 중 3분의2 이상은 만료 시점을 5개월이나 넘긴 채 방치돼 있었다. 특히 사고 군함들이 소속된 제7함대는 전투함 11척 중 8척이 인증 기한을 넘긴 상태였다.
미 해군 함정을 해상 작전에 투입하려면 기동력과 조종 및 탄도미사일 방어 능력 등을 점검하기 위한 10여개의 인증이 필요하다. 이런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 작전 준비태세가 완비되지 않아 그만큼 사고 발생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아직 지난달 21일 싱가포르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과 충돌해 선체가 크게 파손된 존 S. 매케인함의 사고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태평양에 배치된 전투함들이 너무 자주 출동해 준비 부족을 우려하는 경고음은 꾸준히 있어 왔다. GAO는 “함정 크기는 점점 커지고 배치 기간도 늘어나는 데 반해, 투입 선박 수는 늘지 않았다”며 7함대 군함들이 오래 전부터 사고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GAO가 2015년 5월 작성한 보고서에는 “해군이 해외 주둔 선박들의 일정 탓에 승조원 훈련과 유지보수 시간을 제한해 2009년 이후 장비 성능이 저하되거나 고장 난 사례가 두 배 늘었다”고 적시돼 있다. 미 전략예산평가센터(CSBA)의 브라이언 클락 수석연구원은 “해군이 미인증 사실을 알면서도 함정들을 의도적으로 작전에 투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질적인 시스템 부실 문제”라고 비판했다.
해군 측은 일단 함정 관리 소홀을 인정했다. 해군 관계자는 “배치 전 완벽한 인증을 받는 국내 주둔 군함과 달리 해외에선 출동 빈도가 높아 작전 사이 제한된 시간에 훈련하는 등 승조원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GAO 보고서는 7일 열릴 이지스함 사고 관련 의회 청문회를 앞두고 하원 군사위원회에 제출됐다. 청문회에는 미 해군 작전을 총괄하는 빌 모란 참모차장이 출석해 현행 해상 군사작전의 문제점 및 개선 대책에 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WSJ는 “최근 핵미사일 시험 발사 등 북한의 무력도발이 급증하면서 7함대 함정들의 피로도가 더욱 누적됐다”며 “근본적인 작전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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