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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늪에 빠져드는 ‘학교 밖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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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늪에 빠져드는 ‘학교 밖 청소년’

입력
2017.09.0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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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적ㆍ자퇴 등으로 학교서 나와

가정에서도 제대로 보호 못 받아

자퇴 줄이려면 학업중단숙려제 보완을

A(15)군이 사라진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지난해 3월 학교폭력에 연루돼 B중학교로 전학됐지만 단 하루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릴 때 이혼 한 부모 대신 A군을 맡은 친할머니는 고령이라 올바르게 키울 형편도, 험한 세상에서 지켜줄 보호막도 되지 못했다. 할머니도 A군이 어디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한다.

그런 할머니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A군은 자신처럼 집 나온 친구들과 월세 자취방을 얻어 살고 있다. 낮엔 가출 동지들과 당구장을, 늦은 오후부턴 학교를 마친 친구들을 만나 PC방을 갈 때가 많다. 친구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가면 야간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불성실하단 이유로 쫓겨나기 일쑤다.

그나마 그와 가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락이 닿던 B중 전문상담교사 최모(55)씨조차 “올해 3월부턴 안부를 물어도 답이 없다”고 걱정했다. “A군이 다른 학교 학생을 때렸다” “초등학생 돈을 뺐었다” 등 불길한 소문을 듣는 정도다. 6년째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상담하고 있는 최 교사는 “학교를 떠난 아이들 대부분이 A군처럼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곧 법’이란 안이한 생각으로 범죄에 빠져들게 된다”고 가슴 아파했다.

최근 뒤늦게 밝혀진 ‘강릉 여고생 폭행’ 사건 가해학생 대부분도 지난해 초부터 학교를 떠난 상태였다. 성모 정모 이모 등 이들 5명은 같은 나이(17)로 수시로 어울려 다녔고 해수욕장 등을 전전하며 술을 마셨다. 원룸을 얻어 살기도 했는데, 마땅한 직업이 없어 돈이 궁했다. 월세 문제로 집주인과 싸우기도, 자식을 찾으러 온 친구 엄마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학업중단숙려기간 중인 후배 이모(15)양을 꼬드겨 끌어들이기도 했다.

강릉 사건,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등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 강력사건 가해자는 공교롭게도 모두 ‘학교 밖 청소년’이다. 학교 담장을 벗어난 아이들의 범죄는 너무 잔혹했다. 범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고, 범죄 이후에도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하면서 재범의 늪에 빠질 공산이 큰 그들. 어쩌면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자라는 길이 봉쇄된 아이들. 이들에 대한 실태 파악과 보호 및 관리시스템 정비가 시급해 보인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최근 수년간 수치로도 심각성이 확인된다. 경찰이 각종 학교폭력 사건에 가해자로 검거한 학교 밖 청소년(10~18세)은 2012년 2,055명에서 2016년 5,125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전체 학교폭력 가해자 수가 같은 기간 2만3,877명에서 1만2,805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걸 감안하면, 그만큼 학교 밖 청소년의 학교폭력 비중(2012년 8.6%→2016년 40.0%)이 커졌다는 얘기다.

일단 학교 밖 아이들은 자신들이 잘 아는 곳에서 자신보다 힘이 약한 후배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서울 한 중학교에서 소위 ‘일진’들 10여명이 학생들의 금품을 빼앗고 폭력을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 역시 자퇴를 한 뒤 학교 밖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 대부분은 자기들끼리 생활하다 먹고 살 것도 마땅치 않고 하니 학교 후배들의 돈을 빼앗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비록 학교를 떠났지만 학교 안 아이들과 여전히 연락하고 만나는 등 접촉을 유지한다는 점도 이들이 학교폭력 사건에 꾸준히 연루되는 이유 중 하나다. 강릉 사건의 피해자 역시 가해자들이 다니던 학교 학생이었다. 재학생 간 학교폭력에 학교를 떠난 선배가 개입해 사건을 키우는 게 단지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고 경찰은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또래들끼리만 지내다 보니, 영웅 심리에 젖어 혹은 과시욕에 범죄를 제안하거나 뛰어드는 경우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학교가 아니라면 가정이라도 이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면 좋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애초 학교를 벗어나는 이유 중 상당수가 집안 문제로 인한 가출 탓이기 때문이다. 보호관찰소에 근무하는 김모(55)씨는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도, 이런저런 범죄를 저질러도 방치하는 부모가 많다”며 “이런 경우 결국은 다시 범죄의 늪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이들이 떠나려는 학교가 결국 이들의 방패막이가 돼줘야 한다는 게 현장 얘기다. “아이들이 일단 학교를 떠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선 2013년부터 자퇴를 줄이기 위해 전국 초중고교에 전면 시행된 ‘학업중단숙려제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학생이 자퇴를 요청하면, 최대 8주의 숙려기간 학생들이 상담 및 진로적성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 학교에 나와 담임교사나 상담교사와 면담을 하도록 하고 있지만 허점이 많다는 게 일선 교사들 지적이다.

인천 소재 고교 교사 정모(49)씨는 “학업중단숙려 덕에 자퇴가 상당히 줄어든 건 맞지만, 제도가 보다 실효성 있게 운영되려면 지원이 함께 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퇴 요청 학생에 대한 집중 상담관리가 어렵고, 숙려기간 중 학교엔 얼굴만 비추는 등 형식적으로 참여하다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의 경우를 현재 문제로 꼽았다. 정씨는 “우선 이 제도에 편입되는 학생(자퇴 요청 학생)이 점점 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해 학교마다 대부분 한 명인 전문상담교사를 사정에 맞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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