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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이성
줄리언 바지니 지음ㆍ박현주 옮김
아르테 발행ㆍ460쪽ㆍ2만5,000원
왜 이리도 세상은 미쳐 돌아가는가? 디지털 기술 덕에 이젠 적당히 모르고 넘어가도 될 일들을 속속들이 다 아는 시대가 되면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됐다. 저자는 영국의 철학박사. 고로 바로 결론으로 치닫자면 영국 경험론의 전통에 서 있는 데이비드 흄의 ‘완화된 회의주의’다. 완화된 회의주의란 간명하게 말하자면, 세상이 미쳤다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를 너무 일찍 저버리는 것 또한 옳지 않다”라고 말하는 태도다. 책 자체는 기다란 수다다. 저자는 취재해서 기사 쓰는 철학잡지의 편집장이기도 한데, 그 덕에 대니얼 카너먼 등 세계적 지성들과의 생생한 인터뷰가 책 곳곳에 박혀 있다. 사실 이 책의 재미와 매력의 90%는 여기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세상은 미쳐가는데 나만은 이성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완화된 회의주의를 적용해보길 바란다. 세상의 악행은 대개 나만은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법이니까.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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