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공부
롬브 커토 지음ㆍ신견식 옮김
바다출판사 발행ㆍ280쪽ㆍ1만5,000원
16개 언어 구사. 이런 프로필을 가진 이에겐 평생 똑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잘할 수 있나요?” ‘언어 공부’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중국어, 루마니아어, 덴마크어, 일본어 등 16개국 언어를 구사한 통역사의 언어 공부법이다.
‘영어, 한달 만에 완전 정복’ 같은 책과 다른 점은, 이 책의 초판이 1970년에 출판됐다는 것이다. 저자인 롬브 커토는 1909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2003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커토가 몽상가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외국어 공부 비법이 다른 이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히지만, 왜 언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선 “엉성하게 배워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 언어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엉뚱한 사람이었다.
커토는 어려서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지만 학창 시절엔 외국어 낙제생이었다. 대학에선 화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성적이 그의 관심을 줄이진 못했다. 그가 “이미 언어의 마법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에 언니의 교과서를 휘리릭 넘겨보다가 라틴어 속담이 가득 적힌 페이지를 만났다. 아직 라틴어를 공부하기 전이었지만 아름답게 울리는 문장들을 해독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헝가리 속담을 찾는 일이 굉장히 기뻤다. (…) 나는 간결한 비유적 표현에 담긴 민중지혜의 결정체인 속담과 어구 덕분에 언어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이 낙천적인 언어 애호가의 삶은 모험의 연속이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러시아의 갈등이 극에 달한 1940년대, 커토는 하필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헌책방에서 러시아어-영어 사전을 발견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공습대피소에서 머리 위로 융단폭격이 떨어지는 순간, 그는 러시아 소설을 읽으며 그곳에 발을 디딜 첫 러시아 군인에게 뭐라고 말을 건넬지 고민한다.
때론 진지하게 언어학습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한다. 어린애처럼 외국어를 대해야 한다는 의견에, 그는 단호히 반대한다. “어른을 어린 아이의 지적인 틀에 끼워 넣는 것은 마치 난생 처음 입었던 잠옷에 어른의 몸을 끼워 넣는 것과 같다.”
예나 지금이나 왕도가 없긴 마찬가지다. 저자는 외국어 공부에 일주일에 최소 10~12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절망에 사로잡히려는 순간 커토의 10계명 중 마지막 계명이 독자들에게 웃음을 돌려준다. “스스로 언어 천재라고 굳게 믿어라. 실은 그 반대라는 게 드러난다면 통달하려는 그 성가신 언어나 여러분의 사전들 혹은 이 책에 불만을 쌓아두라. 스스로를 탓하지 마라.”
출간된 지 40년이 넘은 실용서가 지금 의미가 있을까 싶은 우려와 달리, 책은 저자의 장난기와 낙천성으로 반짝인다. 이 책이 국내 출간된 저자의 첫 책이라는 것, 그가 더 이상 책을 쓸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일본의 통역사이자 책 ‘미식견문록’ ‘교양노트’로 국내에도 알려진 요네하라 마리는 “이 책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통역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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