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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게으름? 게으름은 나쁜 것? 다 틀렸다

입력
2017.09.07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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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므완자시의 젊은이들. 도시 인구 66%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이곳에선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경직된 분위기 대신 오늘을 사는 사람들만의 활기가 있다. 더난 제공
탄자니아 므완자시의 젊은이들. 도시 인구 66%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이곳에선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경직된 분위기 대신 오늘을 사는 사람들만의 활기가 있다. 더난 제공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오가와 사야카 지음ㆍ이지수 옮김

더난 발행ㆍ224쪽ㆍ1만4,000원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엔 여러 버전이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 개미는 웃으며 베짱이를 집에 들이고 다른 이야기에서 개미는 매몰차게 문을 닫는다. 어떤 버전을 읽든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독자는 베짱이를 미워한다. 그가 일하는 개미 옆에서 웃고 노래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인류학자 오가와 사야카의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탄자니아 북서부에 위치한 므완자시에서 15년 이상 현지 상인의 장사 관행과 생계 활동을 관찰하며 쓴 책이다. 그는 2002부터 3년 간 직접 헌옷 행상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가 본 탄자니아인들이 베짱이는 아니다. 다만 여름에 미리 겨울을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겨울은커녕 내일조차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삶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합리적이고 계획주의에 근거한 미래 우위”와 “기술과 지식의 축적에 근거한 생산주의적이고 발전주의적인 인간관과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2007년 마흔 살이었던 부크와는 당시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을 가졌다. 가죽샌들에 구슬을 붙였다가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가 건설현장의 계약직 일꾼이 됐다가 고향에 내려갔다가 다시 도시로 올라왔다. 한국이라면 집안의 걱정과 탄식을 한 몸에 받았겠지만, 도시 인구의 66%가 노점상, 영세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인 탄자니아(2006년 탄자니아 정부 발표)에선 좀 다르다. 부크와의 아내의 직업도 계속 바뀌었다. 남편이 놀면 안정적인 재봉질을 했다가, 남편이 계약직 일자리를 찾으면 돈을 더 버는 다른 장사에 도전하는 식이다. 한 가지 일에서 실패해도 다른 일을 찾고, 누군가 실패해도 다른 사람의 벌이로 먹고 산다.

‘안정되고 싶지 않을까?’ 책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 질문에 저자는 바로 그 안정에의 욕구가 현 주류 사회를 떠받치는 힘이라고 지적한다. 풍요롭고 안정적인 ‘내일’을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오늘’을 희생하거나 수단으로 삼으며, 이는 효율, 합리, 성과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와 맞물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돌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재의 연장선상에 미래가 있다는 인식”은 사실 특정 장소와 시대의 산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주류사회에서 벗어났거나 그것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난 세계에서는 오히려 오늘을 사는 삶이 일반적”이다.

저자가 본 탄자니아인들은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처지를 한탄하지도, 반대로 ‘이게 바로 진정한 삶’이라고 떠벌리지도 않는다. 어차피 66%가 날품팔이인 사회이니 당연한 일이다. 내일이 없는 사회엔 이상한 활기가 돈다. 이들은 정부도 회사도 의지하지 않는다. 기술의 축적과 숙련도 믿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게 온 기회를 재빨리 잡고, 아니다 싶으면 얼른 갈아탄다. ‘한 번 해보고, 아니면 말고’의 정신이 지배하는 사회는 유연하고 민첩하다.

저자가 ‘작은 쥐’들이라고 부르는 영세 상인들은 최근 몇 년 간, 그 뚫기 어렵다는 중국 시장에 안착했다. 광둥성 광저우시엔 ‘초콜릿 성’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무역상들의 대형 도매 상점가가 조성돼 있다. 물론 아프리카인들도 중국에서 당하는 사기와 속임수를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이곳 게임의 룰엔 ‘사기 당하는 일’이 포함돼 있고, 이들은 계약서에 의존하지 않는 삶에 특화돼 있다.

이들이 믿는 건 계약서, 중국에 대한 이해도, 거래 상대의 도덕성이 아닌 대면 교섭이다. 거래가 이뤄지기 전부터 상대를 믿을 이유는 없으며, 신뢰는 교섭과정에서 상대를 재빨리 파악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쌓아나간다. 약속을 어기는 중국 상인과 약속을 기대하지 않는 아프리카 상인이 묘한 지점에서 손을 잡은 셈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함박웃음에 초점을 맞추는 ‘1세계적 다큐멘터리’와 달리 책은 탄자니아의 불안한 사회상에 대해 충분히 인지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이 가진 비주류적 활력이 주류 사회에 내는 균열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베짱이에 대한 미움 뒤에는 두려움이 있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 개미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만 홀로 개미로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불안과 초조함이 주류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주류 사회는 오늘을 사는 삶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이 사회 시스템 때문인지 자신의 실존 때문인지조차 모르는 채 두려워하는 것이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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