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형 시험 준비생 이탈하며
근근이 잇던 생계 막다른 길에
손글씨 푸대접에 느는 악필인구
“글씨 자신있다” 10명중 3명뿐
“1990년에 학원 열었을 때만 해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글씨 교정하겠단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수강생이 꾸준히 50명 정도는 됐으니까요.”
30년 가까이 글씨 교정을 지도해 온 A씨는 6일 한때 잘나갔던 시절을 회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학원을 운영하는데 임대료와 관리비를 제하면 남는 게 별로 없다”며 “(학원을 하는) 우리조차 글씨 쓸 일이 없는데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 있겠냐”고 고개를 숙였다.
글씨교정학원 한숨이 나날이 깊어만 가고 있다. PC와 스마트폰이 확산되며 손글씨 쓸 일이 줄어든 데다, ‘글씨를 굳이 잘 쓸 필요 있냐’는 인식까지 퍼지면서다. 손글씨에 대한 무관심은 관련 시험 응시자 추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펜글씨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관계자는 “70~80년대만 해도 한 해 10만명 가까이 되던 응시자가 지금은 1,000명도 안 된다”고 말했다. 차트글씨(특정 영역 안에 알맞은 크기와 모양으로 쓰는 글씨)나 붓글씨 시험은 응시하는 사람이 없어 폐지된 지 오래다.
희박하게나마 남아 있던 방학 특수도 사라졌다. ‘반듯한 글씨=교육의 기본’이라는 등식에 균열이 간 탓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B학원 관계자는 “방학이 되면 엄마 손에 붙들려 오는 초등학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때가 꿈만 같다”며 “이젠 하루 한 명도 가르치지 않을 때가 많아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신세”라고 했다.
자연히 악필 인구는 늘고 있다. 한국교원총연합회가 교원 1,443명을 대상으로 201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교원 10명에 9명 이상(93.5%)이 ‘글씨를 못 쓰는 학생이 늘었다’고 답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직장인과 취업준비생 9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글씨 쓰는 것에 자신 있다’는 사람이 30%에 불과했다.
전망은 더욱 어둡다. 새 정부가 대입 논술전형을 축소하겠다고 밝힌 게 결정타다. 경기 용인시 C학원 관계자는 “수강생 20%가 논술을 앞둔 고등학생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법고시까지 폐지되면서 서술형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 상당수도 이탈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D학원 관계자는 “한때는 글씨 교정이 고시과목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고시생조차 찾아오질 않는다”고 전했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관계자는 “두뇌 자극 등 효과가 있음에도 당장 스마트기기의 효율성에만 매몰돼 글씨 쓰기를 소홀히 여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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