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애들 두고 고향 못가죠”
지하철 직원 “연장운행 탓 더 고되”
막내 간호사 “당직근무 1순위…”
경비원 “빈집에 오는 택배 쏟아져”
“자식처럼 키운 아이들을 두고 저희만 고향에 갈 순 없잖아요.”
강원 영월군의 사회복지사 안정선(57)씨는 한가위 연휴를 고향 대신 ‘그룹홈’에서 보낼 예정이다. 그룹홈은 사고로 가정을 잃거나 학대 받은 아이들이 사회복지사와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아동복지시설. 안씨를 비롯한 사회복지사 4명이 초ㆍ중ㆍ대학생 총 7명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안씨는 “아이들은 찾아 뵐 어른이 없다 보니 명절 연휴에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며 “그룹홈 출신들이 이곳을 ‘고향’처럼 다시 찾기 때문에 연휴라고 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음달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열흘에 걸친 ‘한가위 황금연휴’가 생겼지만 환호하지 못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이번 참에 해외로 나들이 가겠다는 이들을 그저 부럽게 바라보며 “연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관리 하는 사람들, 남들이 쉴 때 누군가를 위해 땀 흘려야 하는 특수직종 종사자들이다.
시민들 발걸음을 책임지는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지하철이 밤 늦게까지 연장 운행하는 연휴에 일이 더 고되다”고 말한다.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직 임모(35)씨는 “낮에 하기 힘든 수리는 지하철 운행 종료 후에 선로로 들어가 하는데, 막차와 첫차 사이가 짧은 연휴엔 작업할 시간이 그만큼 줄어 업무 강도가 높다”고 털어놨다. “연휴에 사고가 나면 대응할 사람이 우리뿐이라는 책임감으로 버틴다”고 덧붙였다.
소방관들은 “휴일이라고 화재가 쉬는 건 아니지 않냐”며 “긴 연휴 사람들이 마음 편히 쉬도록 안전을 지키는 게 우리 일”이라는 반응이다. 현장 소방관들은 일주일마다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반복하기 때문에 주말이나 공휴일에 맞춰 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방관 이모(46)씨는 “우리라고 해서 명절 연휴에 가족과 친척을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라며 “내가 자리를 비우면 동료가 힘들 것이란 생각에 참는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길어진 연휴가 야속하기만 하다. 수도권 소재 병원 신입 간호사 주모(23)씨는 “이번 연휴는 이틀도 제대로 못 쉰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막내 연차 간호사들이 공휴일이나 명절에 가장 먼저 당직에 배정된다”며 “안 그래도 매일 새벽 4시 출근에 진이 빠져 있는데 연휴에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하니 힘이 쭉 빠진다”고 토로했다.
연휴기간 불어난 승객들을 감당할 공항 청소노동자나, 주민들이 떠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도 황금 연휴가 두렵긴 마찬가지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손모(52)씨는 “이용객들이 수화물 부피를 줄이기 위해 공항에 버리고 가는 포장재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며 “명절에 쉬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근무가 잡혀 이번 추석도 가족과 보내기는 글렀다”는 경비노동자 이모(72)씨도 “주민들이 집을 비운 상황에서 택배가 쏟아지는 연휴가 더욱 힘들다”고 했다.
취업준비생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10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대기업 채용을 생각하면 연휴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대학생 최모(23)씨는 “집에 가봐야 친척들에게 불편할 질문이나 들을 게 뻔하다”며 “취업에 성공해 내년에는 연휴를 가족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