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 가까운 대북 제재 논의 냉기류
푸틴 “축구 월드컵 진출 축하”에 웃음
金여사, 헤이그 밀사 이상설 참배
외국 정상과의 회담에 번번히 늦어 악명이 높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도 30분 가까이 지각했다. 두 정상은 원유공급 중단 등 대북 제재 강화 문제를 놓고 설전에 가까운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한국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 얘기로 이내 풀어졌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항일 독립운동 거점인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문화센터를 방문하고, 이상설 선생 유허비를 참배했다.
한ㆍ러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당초 예정된 정상회담 개최 시간인 오후 1시가 돼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 내 회담장에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왜 늦는지에 대한 러시아 측 설명은 없었다. 푸틴 대통령은 결국 34분 늦은 오후 1시34분 회담장에 나타났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 무려 4시간이나 늦게 도착하는 등 정상회담 상습 지각생으로 불린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며 "30분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2시간 40분간 이어진 한러 단독ㆍ확대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에서도 자기 할말을 앞세웠다.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한 ‘러시아와 중국의 로드맵’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원유공급 중단 등 대북 추가 제재 동참 요구를 공식 거부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선 7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책 한 권 가량의 수첩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20분간 발언을 한 전례가 있다.
장시간 대화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입장만을 앞세우며 공개발언을 하자 문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짧게 언급하는 데 그치며 양국 정상간 대화가 평행선을 달렸음을 감추지 않았다.
딱딱했던 분위기는 푸틴 대통령이 공동언론발표가 끝나고 “이번에 한국 축구대표팀이 2018년도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게 된 것에 대해 축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며 다소 풀렸다. 푸틴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문 대통령은 크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고 박수가 쏟아졌다.
김정숙 여사는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고려인 문화센터 내 역사관과 아이랑 전시실 등을 둘러보는 등 재러 동포들을 만났다. 현지 어린이들과 ‘하회탈’을 만들기도 했고, 지금은 고령이 된 고려인 2, 3세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아리랑’을 연습하는 현장도 방문했다. 고종황제의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선생의 외손녀 이현씨 등과 함께 우수리스크 인근 강변에 있는 이상설 선생 유허비도 참배했다.
블라디보스토크=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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