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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헨드릭 페르부르트(9월 6일)

입력
2017.09.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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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 페르부르트 전 수상이 1966년 오늘 숨졌다. 사진은 기념우표.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 페르부르트 전 수상이 1966년 오늘 숨졌다. 사진은 기념우표.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ㆍ차별정책)를 설계하고 법체계를 구축한 사회심리학자 출신 정치인 헨드릭 페르부르트(Hendrik F. Verwoerd)가 1966년 9월 6일 피살됐다. 그는 아프리카 남부 백인 민족집단 아프리카너(Africaner)의 오랜 꿈이던 백인 공화국 수립을 실현한 그들의 영웅이었지만, 흑인을 비롯한 비(非)백인들의 삶을 근 50년간, 생활공간에서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유린한 정치인이었다.

1901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2세 무렵 가족과 함께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로 이주했다. 식민지 2등 백인 시민으로서의 열등감과 흑인 등 타 인종ㆍ민족에 대한 우월의식이 그에겐 있었다. 남아공 스텔렌보스대학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했고, 25년 독일서 사회적 다윈주의(사회진화론)를 연구했다고 한다. 28년 귀국한 뒤 모교 심리ㆍ사회학과에서 교수로 지내며 반공 국수주의 정당인 국민당 활동을 병행했다. 37~48년 당 기관지 격인 ‘트란스발러 Die Transvaler’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당내 입지를 굳혔고, 48년 총선에서 국민당이 압승하면서 상원의원이 됐다. 그 해 국민당 총선 공약이 ‘아파르트헤이트’였다. 그는 50년 원주민문제담당장관으로서 흑인자치정부촉진법(반투자치촉진법, 집단지구법 등으로도 불린다) 제정을 주도했다. 흑인 거주지를 8개 독립 보호구역(반투홈랜드)으로 제한해 주민을 강제 이주시킨 저 법으로 남아연방 흑인사회를 비롯 국제사회가 들끓었으나, 그는 아프리카너의 영웅이 됐다.

페르부르트는 58년 남아프리카연방 수상이 됐다. 영국 정부가 차별 정책을 비난하자 그는 60년 국민투표를 통해 연방 탈퇴를 가결, 이듬해 5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체제를 전환했다. 흑인뿐 아니라 비백인들의 거주지를 분리한 ‘유색인 거주지구법’, 인종ㆍ민족별로 교육을 차별화한 ‘대학교육확장법’ 등이 그의 ‘작품’이었다.

66년 재선에 성공한 그는 9월 6일 의회 연설 직전, 정신이상자였던 48세 백인 의회 임시연락원의 칼에 찔려 숨졌다. 사후 그는 남아공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의 ‘영웅들의 묘소’에 안장됐고, 후임 정부는 주요 병원과 거리 공항 등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 이름들은 물론 넬슨 만델라 이후 모조리 개명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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