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0시부터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의 KBS본부(KBS새노조)와 MBC본부(MBC노조)가 동시에 총파업했다. 공영방송으로는 5년만에 일어나는 이번 총파업에 양 방송사에서 각각 2,000여명의 노조원이 참가했다. KBS의 양대 노조 중 1노조도 7일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어서 파업 참가 인원이 더 늘어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이 훼손한 공공성과 공정성을 회복하겠다”며 고대영 KBS 사장과 이인호 이사장, 김장겸 MBC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이 벌인 지난 8년간의 싸움을 사진으로 정리했다.
2008년, KBS 정연주 사장 해임과 MBC PD수첩의 광우병보도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싸움은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과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사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무현 정부 시기인 2003년 KBS 사장에 임명된 정전 사장은 2008년 적자 경영 등을 이유로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았다. 야당과 진보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 보도를 한 KBS를 장악하기 위한 음모라고 이를 비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멘토였던 당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KBS 이사장을 내세워 이사회를 소집했고, KBS 이사회는 정 전 사장의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MBC 사태는 2008년 5,6월 촛불집회를 부른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발단이었다. 검찰은농림수산식품부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을 고소하자 수사해 관계자를 체포했다. 이후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와 ‘100분 토론’의 손석희 아나운서도 하차했다.
2010년 MBC 김재철 사장과 ‘청와대 조인트’
2010년 2월 엄기영 당시 MBC 사장은 방송문화진흥원(방문진)에 반발해 사임했다. 이후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을 후임으로 임명했고, MBC 노조가 크게 반발하며 출근저지 투쟁을 벌였다.
이 가운데 MBC의 대주주인 김우룡 이사장이 3월 “김재철 사장이 ‘큰 집’에 불려가 조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를 정리했다”는 내용의 신동아 인터뷰가 나오면서 노조의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큰 집이란 청와대를 의미한다. 이에 MBC노조는 김 사장이 언론 장악을 위한 낙하산 인사라며 2010년 4월 5일부터 5월 13일까지 퇴진 요구 파업을 벌였다.
2012년 MBC 170일, KBS 95일 파업과 징계의 쓰나미
2012년 언론파업은 1월 MBC 기자들의 뉴스 제작 거부로 시작돼 KBS, YTN, 연합뉴스 등 으로 확산됐다. 김 전 사장 체제에서 MBC는 공영방송의 권위가 추락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후 시사 프로그램, 보복성 인사가 이어지자 MBC 노조는 투표를 통해 총파업을 결정했다. 당시 MBC 최고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24주간 결방됐다.
KBS도 2012년 3월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발단은 2012년 1월 사측의 조합원 '뒷북징계'였다. 사측이 2010년 노조 파업을 문제삼아 조합원 13명을 징계하자 KBS새노조는 부당징계, 막장 인사 철회 및 김인규 사장 심판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행했다. 새노조 파업은 2012년 6월 8일까지 94일간 진행됐고 노사 합의 후 종료됐다. 이후 연합뉴스 노조가 2012년 6월 25일 업무에 복귀했으며, MBC 노조도 7월 18일, 170일의 총파업을 잠정 중단했다.
파업 과정에서 방송사들은 노조원들을 징계했다. MBC는 박성호 기자회장과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 최승호 PD, 박승제 기자, PD수첩 메인작가 전원을 해고하고 최일구 앵커, 김민식 PD 등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다. KBS 역시 20여명의 파업 참가자들에게 해임, 정직, 감봉 등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2014년 ‘세월호 교통사고’ 발언이 부른 KBS 파업
KBS 양대노조는 2014년 5월 28일부터 6월 5일까지 길환영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했다. 발단은 KBS 김시곤 보도국장이 회식 도중 세월호 침몰 사고 사망자보다 대한민국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많다는 취지의 발언 때문이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세월호 실종자, 사망자 가족들은 5월 8일 KBS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청와대 앞으로 나아가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길 전 사장은 다음날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사과했고 김 보도국장은 사의를 표명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국장은 길 사장 역시 보도국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며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김 국장의 발언은 지난해 7월 언론노조가 공개한 녹취록을 통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김 국장은 2013년 초부터 1년간 보도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청와대와 길 사장의 보도개입 사례를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이를 통해 세월호 참사 때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 국장의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청와대의 적나라한 방송 개입이 드러났다.
2017년 MBC 막내기자의 반성문과 블랙리스트
올해 공영방송 투쟁의 불씨는 막내기자들 손에서 시작됐다. 1월 MBC 기자들은 ‘MBC 막내 기자의 반성문’이라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지난해 자사의 촛불집회 보도를 반성하는 내용과 보도파행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었다. MBC 인사위는 이 영상 제작에 참여한 기자들에게 근신 및 출근 정지라는 징계로 대응했다.
MBC와 KBS에서는 ‘블랙리스트’도 터졌다. 지난달 MBC노조는 MBC 카메라 기자들의 노조 활동과 회사 충성도를 4등급으로 구분한 ‘카메라 기자 성향분석표', 일명 ‘MBC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폭로했다.
KBS 노조도 ‘블랙리스트’ 로 투쟁 분위기가 조성됐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올 1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KBS1 ‘아침마당’에서 출연 보류 통보를 받았다. 한완상 전 부총리는 지난 달 자서전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에서 당시 문 후보에게 개혁을 당부했다가 KBS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에 출연하지 못했다.
양 방송사 노조는 모두 “이번 파업이 2012년 파업보다 더 큰 규모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만큼 양 방송사 노조는 이번 파업이 보수 정권 9년간 급격히 위축된 공영방송의 위상과 공정성 회복의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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