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낱말을 몇 가지로 분류할 때 어원을 기준으로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구분을 하다 보면 ‘사과나무’, ‘아카시아꽃’, ‘흑백텔레비전’과 같은 이 세 가지 요소가 뒤섞인 낱말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을 혼종어라 이른다.
그런데 중국의 고유 문자를 뜻하는 ‘한자’를 품게 하여 만든 ‘한자어’라는 표현은 잘 따져보면 꽤 이상한 낱말이다. ‘한자어’가 성립될 수 있는 표현이라면 ‘한글어’나 ‘로마자어’, ‘키릴자어’도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데, 이런 표현들은 굉장히 낯설지 않은가. 이런 말들이 쓰이지 않는 이유는 문자라는 것이 특정 언어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체계만 맞추면 어떤 언어의 표기 체계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키릴 문자는 러시아어를 비롯한 슬라브어파의 언어들을 적는 데 주로 쓰이는 문자 체계인데 구소련 체제의 영향으로 몽골어나 중앙아시아 지역의 튀르크어파의 언어들에도 쓰이고 있다.
이런 일반적인 어법에서 벗어난 ‘한자어’라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중국어에서는 한 음절이 한 단어인데, 그것이 우리말에 들어와서는 상당수가 단어보다는 단어의 조각으로 변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할 수 있을 듯하다. ‘경제’, ‘마술’, ‘행동’ 등에 들어 있는 그 조각은 중국어에서 온 외래 형태소(의미를 나타내는 최소 단위)이므로 정확하게 이름 짓자면 ‘중국어 기원 형태소’로, 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단어는 ‘중국어 요소 활용 어휘’ 등으로 표현하여야 한다. 그러나 너무 길어 번거롭다. 그래서 이 낱자로 된 말 조각을 손쉽게 ‘한자’라고 불러왔고, 그것이 어원인 단어를 ‘한자어’로 일컬어 온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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