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유엔 무대에서 북핵 대응책으로 전쟁 불사까지 언급하면서 북핵 불씨가 미-중 갈등으로 급속히 옮겨붙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뿐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독자 무역 제재를 둘러싸고도 양국이 날카롭게 대립해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4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소집된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미국과 중국간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났다. 국제사회는 북한 도발에 대해 일제히 규탄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북핵 해법을 두고선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은 '초강력 제재'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대화론을 앞세웠다. 특히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김정은은 전쟁을 구걸하고 있다”라며 “전쟁은 결코 미국이 원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의 인내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다”며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그는 “반쪽짜리 제재는 이제 끝낼 때”라며 가장 강력한 제재 조치를 촉구했다. 전날 ‘어떤 위협도 엄청난 군사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다’고 천명한 미국 정부의 강경한 대북 입장을 더욱 고조시킨 것이다.
헤일리 대사는 회의장에서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이후 북한이 국제법을 무시해온 각종 도발 내용을 상세히 거론하면서 “24년간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더할 나위 없이 진보했고 위험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 대가로 한미의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을 주장해온 중국의 쌍중단(雙中斷) 해법을 겨냥해 “어떤 나라가 제안한 이른바 ‘동결 대 동결’(freeze for freeze)은 모욕적”이라며 “불량국가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겨냥하는데 보호막을 거둘 나라는 없다”고 중국을 면전에서 성토했다.
이에 류제이(劉結一) 유엔주재 중국 대사는 “한반도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며 “중국은 결코 한반도에서 혼란과 전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모든 당사자가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한 ‘중단 대 중단’ 제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것을 요구한다"며 '쌍중단 해법'을 거듭 제안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도 “군사적 해법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중국과 보조를 맞췄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중국이 주최한 브릭스(BRICS) 개막일에 맞춰 단행되는 등 중국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대북 입장 변화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결국 중국의 기존 입장이 재차 확인된 셈이다. 헤일리 대사는 내주 11일 표결을 목표로 금주 중 제재 초안을 내겠다고 밝혔으나 중국의 입장 고수로 제재 수위를 놓고 또다시 지루한 힘겨루기 협상이 벌어질 공산이 커졌다. 미국은 원유 공급 중단을 최대 목표치로 두고 있지만 중국의 미온적 반응으로 벌써부터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 카드로 꺼낸 세컨더리 보이콧, 나아가 통상금지를 두고서도 중국이 즉각 반발하는 등 양국간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와 교역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에 중국 외교부는 “우리의 이익이 침해되는 건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한 데 이어 이날 관영매체들이 총동원돼 “북핵 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과의 교역 중단은 미국으로서도 엄청난 경제적 타격이란 점에서 북한과 거래 규모가 큰 특정 기업과 개인을 대상으로 면도날 제재가 가해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유엔 제재와 별도로 미국이 정상적인 거래에 대해서도 중국 기업을 제재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도 자국 내 리더십 확보 차원에서 맞대응에 나서 양국간 통상 분쟁을 초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워싱턴=송용창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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