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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전기자동차를 타고 싶다

입력
2017.09.0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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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동차, 에어컨, 엘리베이터라고 대답하겠다. 그렇다. 나는 석유에 중독되어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 고마운 존재들이다. 이 가운데 자동차에게 특별히 감사한다. 자동차가 없었다면 우리의 세계는 정말 작았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자동차 수는 2,200만대. 물론 그 많은 자동차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90%의 차량은 어딘가에 주차되어 있다. 승용차 한 대 주차하는 데 12㎡가 필요하니 모든 자동차를 세우려면 2억6,400만㎡를 써야 한다. 축구장 3만6,000개 넓이다. 단지 차를 보관하는 게 아니라 잠시 세워두었다가 이용하려고 한다면 주차 면과 같은 면적의 통로가 더 필요하다. 그러니까 축구장 6~7만 개 면적의 땅을 주차하는 데 쓰는 셈이다. 역시 고마운 것들은 거저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자동차는 마법의 양탄자가 아니어서 밥을 먹어야 한다. 가솔린, 디젤, 부탄가스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곳곳에 주유소와 가스충전소가 있다. 간선 도로가 발달하면서 주유소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1만2,000곳이나 된다. 자동차 1,800대 당 주유소 한 곳이 있는 셈이다. 인구 80명 당 한 개씩 있는 식당이나 220명당 한 대 꼴인 택시에 비하면 아직도 할 만한 장사인 것 같다.

요즘엔 새로운 밥을 먹는 자동차들도 제법 보인다. 전기를 먹고 움직이는 자동차다. ‘전기 자동차가 친환경 자동차’라는 믿음은 절반만 맞다. 전기 자동차가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같은 환경저해 물질과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기 자동차가 사용하는 전기를 생산하려면 어디에선가 발전기를 돌려야 하고 이때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단지 배출 장소가 도시가 아니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 자동차는 도시환경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전기 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 구입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는 보조금을 지급한다. 소비자인 시민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전기 자동차 보급을 환영한다. 하지만 선뜻 구매에 나서지 못한다. 단지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기차를 충전하기가 아직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전국의 전기차 충전소는 700곳이 채 안 된다. 주유소의 17분의 1이다. 2016년 말까지 등록된 전기차가 1만6,000천대이고, 2017년 말에는 4만6,000대로 추정되는 걸 생각하면 17분의 1의 비율은 아주 훌륭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주유소 네 개를 지나야 충전소가 나오는 꼴이기 때문이다.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일반 자동차는 그저 목적지로 가다가 필요하면 아무 때나 주유소에 들리면 되지만 전기차 이용자는 동선을 정할 때 충전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솔린을 주유하는 데는 5분도 안 걸린다. 주유를 일로 생각하는 운전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 전기자동차를 충전하려면 급속 충전은 20~30분, 완속 충전은 4~6시간이 걸린다. 충전은 일이 된다. 또 겨우 전기 충전소를 찾아갔는데 다른 자동차가 충전 중이라면 낭패다. 오죽하면 전기 충전소가 현재 사용 중인지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다 있겠는가.

불편은 누군가에게는 기회다. 대형 마트와 전기차 생산자가 손을 잡았다. 대형마트는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자동차 업체는 여기에 충전기를 설치한다. 대형 마트의 입장에서는 전기차를 충전하느라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하는 운전자를 자신의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고, 전기자동차 생산업체는 전기자동차 판매 기회를 늘릴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그림이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대형 아파트 단지나 공공건물 주차장에 일정 비율로 전기차를 위한 주차 면을 만들고 거기에 유료 충전기를 설치해야 한다. 시골 길에서도 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봇대는 무려 900만 개. 이 가운데 3만 개만 골라서 전봇대 옆에 차를 세우고 충전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시민들은 전기차를 사는 데 크게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부 전기 자동차 충전소 홈페이지를 보면 “전기 자동차를 충전하면 지구의 에너지가 충전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전기 자동차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전기 자동차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운전자가 필요없는 자율자동차가 일반화 되면 주차장을 차지하고 있는 그 많은 자동차들은 필요 없어진다. 모두가 자동차를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차를 생산하고 폐기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와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땅도 아낄 수 있다

전기차 충전소를 세우고 자율 자동차를 개발하고 북한 수소폭탄 대비책도 세워야 한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그런데 고작 지구 역사가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데 에너지를 쓰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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