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확고한 의지 보여야 신뢰 회복
국토교통부가 고속ㆍ시외버스에 장애인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과 관련해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을 2019년 9월까지 마치겠다고 공언했음에도, 장애인 단체들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있어 우선 땅에 떨어진 정부 신뢰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뢰 저하는 국토부가 스스로 내건 약속을 깨면서 자초한 측면이 있다. 국토부는 2012년 발표한 ‘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 ‘201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을 41.5%로 높이겠다’고 약속했지만, 2016년 말 실제 저상버스 비율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19%에 불과했다. 그리고 국토부는 올 2월 발표한 ‘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2021년까지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을 42%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정부는 기술적 이유를 대지만, 사실 의지의 문제가 아니겠냐”면서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정부는 2019년 9월에 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저상버스 도입을 미룰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일단 안전에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시범 사업 등을 실시하거나, 최소한 장애인 이동편의장치를 갖춘 고속ㆍ시외버스의 도입 비율 목표치를 제시해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 단체들은 “연구 용역 비용 80억원으로 차라리 저상버스 80대를 마련해 시험 운행을 하라”며 요구하고 있다.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구 용역을 맡겨 놨으니 기다리라’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지금도 충분히 저상버스나 장애인 승강장치가 설치된 버스를 단계적으로 시험 가동을 해볼 수 있으며, 이런 전향적인 검토 없이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든, 장애인 단체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더 넓히도록 노력ㆍ협조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장애인 이동권 확대를 ‘유니버설 디자인’(보편적 설계)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그것이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은 곧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수혜자가 장애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장애인 단체들이 앞장 서서 설치를 요구했던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는 현재는 고령자나 유모차를 미는 부모 등이 더 큰 수혜자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접근법은 일부에서 가지고 있는 ‘기차, 항공 등 다른 교통편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정확한 수요 예측도 없이 한 대당 4,000만원씩을 들여 고속버스를 개조하거나 1억원 이상을 들여 저상버스로 교체하는 것은 상징적 의미만 있고 실효성은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다.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의 시선에도 괴로움을 느낀다. 지체장애인 이원교(51)씨는 “휠체어가 들어가는 자리에 설치된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두 명이 나를 위해 자리를 비켜줄 때 승객 모두 나를 쳐다보는 그 시선이 견디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저상버스를 기피하는 장애인이 적지 않다”며 시선의 에티켓도 주문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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