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동반 이주율 32% 그쳐
수도권 인근 강원ㆍ충북은 더 낮아
주말 상가는 폐장한 장터 분위기
공용터미널 대합실은 어두컴컴
# 교통 등 정주여건 확충 시급
충북엔 종합병원 한 곳도 없어
고등학교는 4년 만에 처음 개교
국가적 차원서 대책 마련 필요
“저희 가게는 토요일엔 문을 열지 않습니다.”
지난달 26일 오후 강원 원주시 반곡동 혁신도시 내 상점가. 한국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관광공사 등 12개 공공기관 이전이 모두 마무리된데다 폭염도 한풀 꺾인 주말이라 나들이 객이 꽤 많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빗나갔다. 거리는 한산했고 주말 대목을 잡기 위해 분주한 상가의 모습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몇몇 업소에는 ‘토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주민 김신연(43)씨는 “공공기관 직원들이 서울로 썰물처럼 빠져 나간 주말에는 폐장한 5일 장터만큼 황량하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군과 음성군 경계에 자리한 충북혁신도시는 주말 공동화현상이 더욱 심하다. 1일 찾은 혁신도시공용터미널은 금요일 오후인데도 승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텅텅 비어 있었다. 대합실은 실내등을 절반 이상 켜놓지 않은 탓에 어두컴컴했다. 터미널에 입주한 식당 주인 최모씨는 “터미널 문을 연지 1년이 넘도록 노선이 크게 늘지도 않고 막차가 오후 7시면 끊기는데 무슨 손님이 있겠느냐”며 “‘무늬만 터미널’인 곳에 잘못 들어와 손해만 잔뜩 봤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전기관들의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되자 거리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터에 주차해있던 10여 대의 대형 버스들이 대로변에 줄을 서더니 이전기관들을 차례로 돌며 직원들을 싣기 시작했다. 10여분 만에 9개 이전기관을 훑은 버스들은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인 백지숙(60)씨는 “매일 출퇴근하는 저이들을 붙잡아야 우리도 살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의 현지 정착이 지지부진하다. 특히 수도권과 가까운 강원, 충북 등에서는 직원 태반이 출퇴근하거나 ‘나 홀로’이주족이 많아 혁신도시 조기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전국 10개 혁신도시내 이전기관 직원들의 가족동반 이주율은 평균 32.5%에 머물러 있다. 미혼 독신인 직원을 포함해도 이주율은 56.2%로 절반을 갓 넘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강원, 충북 등 수도권과 가까운 혁신도시의 이주율은 훨씬 낮다.
3개월 전 공공기관 이전을 마무리한 원주혁신도시의 가족동반 이주 직원은 전체의 26.1%로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혼자 이주한 직원은 64.5%나 되는데, 이들 대부분이 금요일만 되면 수도권으로 올라가 원주혁신도시를 ‘주4일 도시’로 만든다는 게 지역민들의 얘기다. 이쯤 되자 지역에서는 “균형발전이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애초 혁신도시 입지를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강릉 등 영동권으로 선정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뒤늦은 후회마저 나온다.
충북혁신도시는 현재까지 이전한 9개 기관 직원 2,321명 가운데 가족 동반 이주자는 16.0%인 371명에 불과하다. 반면 47.9%에 달하는 1,113명은 매일 회사가 마련해 준 셔틀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나머지 837명(36.1%)은 혼자 내려와 외롭게 생활하는 이른바 ‘혁신기러기’들이다.
그렇다고 공공기관 임직원들만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이 매일 왕복 3시간 출퇴근이나 주말 부부로 사는 불편을 감내하는 것은 혁신도시의 정주여건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혁신도시의 생활 환경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지만, 교육 의료 문화 등 정주 시설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배후도시도 없이 면 단위 농촌지역에 둥지를 튼 충북혁신도시에는 아직 종합병원이 한 곳도 없다. 학교도 부족해 고등학교는 공공기관 이주가 시작된 지 4년 만인 올해 달랑 1개교가 개교했다. KTX오송역을 잇는 버스가 지난달에 생겼지만, 운행횟수가 단 2회에 불과해 교통에 별다른 도움이 안되고 있다. 더구나 이곳은 진천군과 음성군 두 지역에 반반씩 걸쳐 도시가 조성된 탓에 행정서비스는 물론 버스ㆍ택시 요금까지 이원화돼 있어 주민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2015년 가족과 함께 충북혁신도시에 정착한 이상근(51ㆍ한국소비자원)씨는 “국가시책에 부응하자는 생각으로 반대하는 가족을 설득해 이사했는데 이주민을 위한 정주 시설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무엇보다 교육, 의료시설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전기관 종사자들의 정착이 늦어지는 이유를 공공기관 이전과 도시시스템 개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은 결과라고 진단한다.
김지엽(아주대 건축학과)교수는 “택지를 만들어 일괄적으로 분양하고 끝내버리는 식으로 혁신도시를 개발하다 보니 애초부터 도시별 특색도 없고 사후관리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 결과 지역균형 발전이란 취지는 무색해지고 공기업 직원조차 이주를 꺼리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원주 을)국회의원은 “혁신도시가 빨리 자리잡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국가적 차원의 큰 그림을 그리고 정주 시설을 확충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천ㆍ음성=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원주=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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