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맞수 슐츠와 TV토론
난민ㆍ빈부격차ㆍ북한문제 등 격론
방송 4개 채널 97분간 생중계
종료 직후 여론조사 55:35로
부동층 46% 표심잡기는 과제
24일 실시되는 총선에서 4선 연임을 노리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사실상 유일한 적수인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SPD) 당수와의 TV토론에서 안정적으로 승기를 잡았다. 선거를 불과 3주 앞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뤄진 생중계 토론에서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재임 12년 성과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 만큼 ‘메르켈 대세론’이 굳어졌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메르켈 총리와 슐츠 당수는 3일(현지시간) 밤 97분간 난민과 안보, 경제 불평등 등 다양한 사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공영ARD방송 등 4개 채널에서 생중계 된 이번 토론은 앞서 유권자 5분의 1이 방송을 보고 지지 정당을 정할 것이라고 답했을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슐츠 당수는 이날도 2015년 100만여명의 난민을 유입시킨 정책을 집요하게 공격했으나 메르켈 총리는 “매우 긴박한 상황에 총리로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방어했다. 슐츠 당수는 이밖에도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빈부격차 문제 등을 거론하며 메르켈 총리가 “유권자와 동떨어져 있다”고 공격했지만 반전 기회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집권당인 메르켈의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은 여론조사에서 제1야당 사민당을 지지율 15~17%포인트 격차로 따돌리며 안정적으로 앞서고 있다.
대북 접근법에 관한 슐츠 당수의 공세는 오히려 메르켈 총리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메르켈 총리가 이날 6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평화적 외교’를 강조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논의하겠다”고 밝히자 슐츠 당수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지적하면서 독일 내 반미여론에 편승하는 듯한 태도로 공격했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다시 “온 힘을 다해 미국으로 하여금 외교적 해법을 찾게 하겠다”고 받아 치면서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임을 확신시켰다. 북한 문제에 대한 슐츠의 공격이 도리어 메르켈에게 ‘자유 세계의 지도자’라는 왕관을 씌워준 꼴이라고 현지 언론은 평가했다.
결국 여론은 메르켈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ARD방송이 토론 직후 조사한 결과 응답한 시청자의 55%가 메르켈 총리가 우세했다고 답한 반면 35%만 슐츠를 택했다. 이는 메르켈이 당 대표로 총선을 앞두고 치른 역대 양자토론 중 최고 성과다. 좌파 성향 일간지로 기민당 정권에 비판적인 쥐트도이체 차이퉁도 이날은 사설을 통해 “메르켈은 다시 돌아온 한 나라의 수장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반면, 슐츠는 심심하고 (지도자로서 갖는) 힘을 이해하지 못한 옆집 친구 같았다”고 평했다.
1대1 토론에서 패배한 슐츠로서는 메르켈과 차별화 전략을 펴는 데 한층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이 메르켈 총리가 집권한 12년 중 8년(2005~2009년ㆍ2013년~올해) 동안이나 기민당ㆍ기사당 연합과 연정을 꾸렸던 탓에 정책을 공격하는 일도 여의치 않다.
물론 메르켈 총리에게도 과제가 전혀 없진 않다. 여전히 유권자의 46%가량이 표심을 정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메르켈은 이날 토론의 명백한 승자였지만 수많은 부동층을 사로잡진 못했다”며 “유권자들이 1,2위 주자 사이 별다른 차이나 신선한 관점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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