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당선 무효화하자 반격
정치혼란 충돌 가능성 커져
대법원 판결로 지난달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이 무효화된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판결 존중’ 입장을 뒤엎고 사법부 개혁을 예고하며 반격에 나섰다. 케냐의 고질적 문제인 불공정 선거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을 두고 케냐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했다는 평이 쏟아지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정치 혼란 가중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케냐타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TV 생중계 연설 도중 대법원을 향해 “분명 문제가 있다”며 재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사법 체계를) 고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대법원이 향후 60일 이내 대선 재실시를 명령한 가운데 재선에 성공 시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사법개혁을 서두르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전날 "개인적으로는 승복할 수 없지만 (대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며 비교적 온건하게 대응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앞서 1일 케냐 대법원은 지난달 치러진 대선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며 선거 결과를 무효 처리했다. 대법원은 야권연합 라일라 오딩가 후보가 “선관위 전산망이 해킹 당해 선거결과가 조작됐다”며 제기한 이의신청을 4대 2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대법원이 과거 2007년 투표 조작 의혹을 기각해 대규모 유혈사태를 낳았던 선례를 뒤집으면서, 사법부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케냐 주재 미국ㆍ영국ㆍ독일 등 서구권 24개국 대사도 공동성명을 통해 “대법원 판결은 케냐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법치에 대한 헌신을 보여줬다”며 환영 의견을 표명했다. 다시 기회를 얻은 야권과 지지자들도 대법원 판결에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여야 지지자 간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도 크다. 선거 전부터 부정선거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 데 이어 실제 대선 4수(修)째인 오딩가 후보가 또다시 패배하자 야권 지지자들은 대규모 집회를 이어가며 거세게 반발했다. 시위대와 경찰 간 유혈사태로 선거일부터 현재까지 최소 24명이 숨졌다
한편 동아프리카 최대의 경제대국인 케냐 정국이 불확실성에 휩싸이면서 외국인 투자 감소 등 성장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매번 폭력사태를 동반하는 대선만으로도 경제 위험 요소인데, 약 10년만에 정권이 교체될 경우 관료체계 등 국가 시스템 전체가 일순간 뒤바뀔 수도 있어서다. 조슈아 키부바 나이로비대 정치학 교수는 “선거는 기업 경영진들이 두려워하는 최대 악재”라며 “선거철에 곤두박질 치는 성장세를 다시 회복하려면 2년여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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