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김장겸 MBC 사장이 입사한 건 민주화 바람이 한창인 1987년 말이다. ‘땡전뉴스’로 경멸 받던 방송계 내부에도 언론 민주화 요구가 분출해 MBC는 방송사로서는 처음, 언론사 전체로는 한국일보 다음으로 노조가 결성됐다. 당시 김 사장은 수습이 끝나자마자 동기들과 함께 노조에 가입했다. MBC노조는 단체협약에 공정방송 조항을 넣는 등 방송 민주화 제도적 장치 마련에 주력했다. 첫 결과물로 나온 지상파 최초의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는 44%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보였다.
▦ 김 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방송장악’ 시도가 노골화한 2009년 노조를 탈퇴했다. 이어 MB와 친분이 두터운 김재철씨가 낙하산 사장으로 내려오면서 거침없이 승진 가도를 달린다. 정치부 기자 경력이 2년도 안돼 정치부장 자리에 오르더니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박근혜 후보의 경쟁자인 문재인과 안철수를 비방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문책 인사를 당해야 마땅한데도 그는 대선 후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으로 연이어 승진했다. 그가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며 승승장구하는 사이 뉴스는 무참히 망가졌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진행되는 동안 MBC는 극우세력의 서식처로 전락했다. 극우ㆍ친박 단체들은 국정농단의 실체를 외면하고 태블릿PC 출처 의혹만 집중 보도한 MBC가 “진정한 애국방송”이라며 응원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MBC사장 선임 국면이던 지난 2월 “김장겸은 진짜 기자”라고 지지선언을 했고,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베’도 김장겸 수호에 나섰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이 MBC밖에 없다”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김 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해 정기국회 의사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극우ㆍ보수 진영이 일제히 ‘김장겸 구하기’에 나선 셈이다.
▦ 김 사장은 스스로를 진영 간 이념 싸움의 교두보로 인식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후배 절대 다수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있는 상황을 엄중히 생각해야 한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언론인에게 동료들로부터 버림받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은 없다. 암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명색이 MBC사장인데 정치생명을 유지하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처연하다 못해 비참하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루라도 빨리 내려오는 게 덜 추해지는 길이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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