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요원 15명 호흡 곤란 호소해 병원 치료
항공조사선 유독성 물질 배출 흔적 안 나왔지만
“눈ㆍ폐 염증 유발… 최대 100만명 피해” 분석도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가 휩쓴 미국 텍사스주의 한 화학 공장에서 31일(현지시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열대성 저기압으로 세력이 약해진 하비가 이 지역을 빠져나간 상황에서, 이제는 화학물질 폭발에 따른 ‘유해 연기’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휴스턴 북동쪽 40㎞ 지점 크로즈비 카운티에 위치한 프랑스 기업 ‘아케마’ 화학 공장에서 이날 오전 2시쯤 저장 시설 2개가 폭발했다. 플라스틱 제조 등에 쓰이는 휘발성 화학물질 2톤가량이 불에 타면서 높이 9~12m의 불꽃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중상자는 없었지만, 폭발 이후 연기를 들이마신 공공안전 요원 15명이 호흡곤란을 호소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귀가했다.
추가 폭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케마 측은 유기과산화물이 든 컨테이너 9대 중 1대를 제외하고는 냉각장치가 모두 고장 났다면서, “(이미 불에 탄 2개를 제외한) 나머지 6개도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유기과산화물은 플라스틱과 약, 건설자재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화학물인데,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연소돼 화재나 폭발을 일으키기도 한다. 앞서 이 공장은 지난 29일 폭우로 1.8m까지 물이 차 오르는 바람에 냉방 안전장비 무력화에 따른 폭발이 예상되던 상황이었다. 반경 2.4㎞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 5,000여명과 공장 직원 전원은 이미 해당 지역에서 대피한 상태다.
현장에 대한 항공 조사를 실시한 미 환경보호청(EPA)은 일단 “건강에 즉각적인 위협을 주는 유독성 물질이 방출된 흔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케마 임원 리처드 레너드는 “폭발과 화재로 생성된 연기가 유해하며, 눈이나 폐, 피부 등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EPA는 현장에 긴급대응 요원들을 배치, 항공조사에서 얻은 데이터를 정밀 분석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케마의 자체 보고서를 인용해 “크로즈비 공장에는 아황산가스가 약 3만㎏가 보관돼 있는데 이 가스가 공기 중으로 흘러나오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반경 37㎞ 이내의 주민 100만명 이상이 해를 입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번 폭발 사고는 아케마 공장이 텍사스주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하비 피해지역에 오염물질 배출, 상하수도 시스템 파손 등 또 다른 위험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특히 “아케마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안전 규제 강화에 반대했던 화학 업체들 중 한 곳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화학업계의 로비를 받고는 2019년 초까지 해당 규제 시행을 연기했다”면서 정부에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버몬트주 식수공급 중단 등 하비 피해 계속 확산
일부 언론선 “사망자 수 최소 44명” 보도
‘하비 이재민=네오나치’ 佛 샤를리 에브도 만평 또 논란
하비가 미시시피주로 이동 중이긴 하지만, 텍사스주의 피해는 계속 확산되고 있다. 버몬트에선 식수 공급이 중단돼 주민 11만8,000명이 고통을 겪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버몬트는 인근 강이 범람, 도시와 외부를 연결하는 도로들이 물에 잠겨 사실상 고립 상태”라고 전했다. 사망자 수도 4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로이터 통신 등은 “하비로 이미 숨졌거나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주민이 최소 44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침수 피해를 당한 가구는 4만8,700가구이며, 이 중 1만7,000가구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텍사스주 공공안전국은 밝혔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는 하비 피해 주민들을 ‘네오 나치주의자’로 묘사한 만평을 30일자 표지에 실어 또 다시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해당 표지에는 폭우로 물에 잠긴 ‘스와스티카’'(卍) 문양 깃발과 나치식 인사를 하듯 물 속에서 밖으로 뻗은 손이 “신은 존재한다. 그는 텍사스의 모든 네오나치를 익사시켰다”는 문구와 함께 그려져 있다.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텍사스주에서 높다는 점(지난 대선 당시 52.6%)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선 부적절한 풍자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지난주에도 이 매체는 스페인 연쇄 테러와 관련해 이슬람교를 조롱하는 만평을 게재했으며, 2005년 1월에는 이슬람교를 희화화한 만평으로 2015년 1월 파리 테러의 표적이 된 바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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