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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노조 만들기 운동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7.09.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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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조조직률 OECD 중 최하위권

불평등 덜한 나라일수록 조직률 높아

노조 할 권리 훼손 나라위상과 안 맞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마당이니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일일이 따지며 취업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경제사정이 좋았던 시절에는 노동조건을 비교해 가며 취업하는 여유가 조금은 있었다. 임금만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당시 비교 기준 중 하나로 노조의 유무를 꼽기도 했다. 삼성 같은 초대기업이야 예외라 하더라도, 노조가 있으면 회사가 직원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복지나 임금에 더 신경 쓸 것이라는 마음에서였다.

1987년 현대그룹 울산 사업장을 비롯한 전국적인 노동자대투쟁으로 많은 기업에 노조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89년 노조조직률이 19.8%까지 치솟아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노조에 가입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2%로 반토막 났다. 외환위기 등 굴곡이 적지 않았다고는 하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다. 노조 하면 머리띠 두른 공장 노동자들의 구호를 먼저 떠올리며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노조 조직률로 볼 때 그들은 소수 중의 소수다. 이를 두고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한국일보 기고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원인은 근본적으로 노동자가 단체를 만들 권리 즉 결사의 자유가 형식화하고 억압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낮은 조직률의 문제를 진단한 바 있다.

이와 달리 노조 조직이 활발한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덜하고 빈곤율 또한 낮다는 것은 학계와 노동계의 상식으로 통한다. 노동의 정치적 대표성이 강할수록 범죄율이 낮고 약자에 대한 보호도 많다. 우리가 늘 부러워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조직률이 50~80% 선에 이르는 것은 이런 현실을 간명하게 보여 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노조에 가입하라”고 촉구한 것이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대통령 취임 후 노조조직률을 높이고 그것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을 터이다.

이런 흐름과 맞물려 요즘 노동계에서는 노조 할 권리 운동과 노조 만들기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양대 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한국 정부가 비준해 공무원노조와 교직원노조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187개 ILO 회원국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등 4개 핵심협약 모두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 한국이 중국, 마셜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로와 함께 포함돼 있다.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택배기사와 대리운전기사들도 노조 설립을 승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새벽녘 문 앞에 와 있는 택배를 받아봤거나, 술 한잔 마시고 누군가에게 운전대를 맡겨 봤다면 그들의 피곤한 삶을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을 테니 법적 보호에 대한 기대를 못 본 체할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단체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가 직장 내 갑질 문화 바꾸기에 나서는 것도 큰 차원에서는 같은 운동이다. 온라인 모임을 중심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갑질 문화를 없애겠다는 것인데 노조 결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제 법적ㆍ제도적 이유로 혹은 사업장 규모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노조 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한국의 국가 위상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조 만들기가 활발해지는 데 기존 노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규모 노조에게는 사적 이해를 넘는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가 있다. 최근 공정 방송을 위해 싸우고 있는 MBC 노조에는 엄청난 지지와 성원이 뒤따르고 있다. 노조의 필요성을 알리는데 이들의 기여가 크다. 반면 기아차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내쫓고 금속노조가 자동차 판매 대리점 노동자들의 가입을 거부한 것은 노조를 이기적 집단으로 비치게 한다. 대표적 노조가 제 이익 추구에만 급급하면 노동 존중의 구호가 아무리 크게 메아리쳐도 노조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커질 수 없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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