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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허상을 맹신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입력
2017.09.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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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인증 마크를 받은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비싼 값을 치르고 자녀들에게 유기농 계란을 사 먹인 부모들이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좁은 면적에서 대량으로 계란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식으로 운영되는 산란계 농장의 열악한 환경이 문제지만, 소비자들의 잘못된 믿음으로 왜곡된 시장 구조도 되짚어 봐야 한다. 서해에서 잡힌 오징어는 동해로 운반되어 울릉도산으로 둔갑하고, 타지에서 길러지고 횡성에서 도축된 한우는 횡성한우로 둔갑하며, 타지에서 재배되고 이천에서 도정된 쌀은 이천쌀이 된다. 심지어 일본 근해에서 잡힌 갈치가 제주산으로 둔갑하고, 수입된 육류가 국내산으로 둔갑하며, 중국에서 수입된 공업용 깨는 국내산 식용으로 둔갑해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우리가 사는 땅에서 산출된 농산물이 우리의 체질에 잘 맞음을 일컫는 신토불이를 신봉하며 국내에서 생산된 식자재만을 선호하는 우리의 소비 문화와 일부 비양심적인 유통업자들의 탐욕이 만들어 낸 촌극이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식자재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내산만을 선호하다 보니,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을 악용하는 유통업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양질의 식자재를 수입하기 위해 수입되는 식자재의 체계적인 이력 관리가 우선 시 되어야겠지만, 맹목적으로 국내산 식자재만을 선호하는 소비 문화도 고쳐가야 할 것이다. 또한 환경오염이 심화되면서 유기농 식자재에 대한 수요와 공급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식자재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식자재는 비싼 가격에 잘만 팔린다.

현실은 제대로 인식하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대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을 외면한 부질없는 믿음이 만들어 낸 왜곡된 사회적 통념은 식자재 시장뿐만 아니라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모순을 낳고 있다. 일년에 한 번도 제 손으로 시장을 본 적도 없는 정치인들이 선거철이면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간식거리를 사 먹는 모습을 TV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식상한 장면임에도 선거철마다 반복되어 연출되는 이유는 그러한 서민적 모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경력과 역량 그리고 공약 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서민적 행보와 인자한 미소가 선거 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은 서민적이어야 하며 많은 재산을 소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 내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얼마 전, 청와대 고위공직자 절반이 다주택 소유자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들이 쏟아내는 군색한 변명을 듣고 있자면, 왜 떳떳하게 부를 축적하기 위해 그들이 쏟은 노력과 정당한 과정을 설명하고 우리에게도 그들처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겠노라고 설득하지 않는지 답답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생을 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고 빚만 지고 사는 공직자보다는 식구들을 부족함 없이 부양하고 남은 여생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공직자에게 나라의 살림도 맡기도 싶다. 물론 그들의 재산 형성 과정이 투명하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본질과 과정은 들여다 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허상을 통해서 성급하게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맹신하며 행하는 의사결정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가? 미신에 사로잡혀 막혀버린 눈과 귀를 열어야 먹거리의 원산지를 속이고 이윤을 취하는 파렴치한 유통업자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공약을 만들고 실천하기 보다는 서민 코스프레로 국민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도 사라질 것이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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