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ㆍ의문사규명위 “규명불능”
권익위 “자살 결론 짓기 어렵다”
‘업무 연관 땐 자ㆍ타살 구분 안해’
軍인사법 개정 따라 5명 순직 처리
김 중위 부친 “사죄 있어야 끝나”
국방부, 의문사 조사 추진단 발족
“내가 살아있는 동안 순직처리라도 돼서 다행” 이라는 예비역 중장의 목소리에는 고단함이 묻어났다. 19년을 뛰어다닌 끝에 아들 김훈 중위의 순직 처리를 통보받은 김척(75)씨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국민의 군대”라며 “늦었지만 다행”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직 김 중위의 사인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기에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그는 “제2, 제3의 사건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 대해 19년 만에 해결의 의지를 내비쳤다. 국방부는 1일 “지난달 31일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진상 규명 불능 사건인 김 중위 등 5명에 대한 논의 결과 이들 모두를 순직 처리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벙커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김 중위는 업무 도중 숨진 순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김 중위의 죽음이 무엇 때문인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다.
김 중위는 1998년 2월24일 정오께 JSA 지하벙커에서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미군 범죄수사대(CID)와의 합동 수사 등 1999년 4월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수사를 실시하고 일관되게 김 중위가 권총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김 중위가 자살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사고 당시 김 중위의 손목시계가 파손돼 있는 등 격투 흔적이 발견됐고, 김 중위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군 감시초소(GP)를 오가는 일부 장병의 심각한 군기문란 행위를 중지시키는 과정에서 살해됐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에 2006년 12월 대법원은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자살에 따른 사망이라는 군의 조사 결론과는 달리 “초동 수사가 잘못돼 자ㆍ타살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2009년 11월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국방당국은 자살이라는 입장을 변경하지 않았다.
김 중위 사건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재조사에서 다시 주목 받게 됐다. 국방부와 합의해 2012년 3월22일 김 중위의 당시 자세를 토대로 한 총기 격발시험에서 실험자 12명 중 11명의 오른손 손등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이다. 이는 오른손잡이였던 김 중위의 왼쪽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됐던 것과는 다른 결과다. 이에 권익위는 같은해 8월 “자살로 결론짓기 어렵다”며 “김 중위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부친 김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자살을 전제로 한 순직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김씨는 “순직 처리를 받아들일 경우 자살을 인정하는 격”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유족의 반발과 진실을 둘러싼 논란 속에 2015년 군 인사법 개정으로 자살을 인정하지 않고도 김 중위를 순직 처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개정법률이 ‘업무 연관성이 있을 경우 자ㆍ타살 여부를 순직 인정 기준에서 배제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김 중위의 순직 처리 결정 또한 개정법률에 따른 것이지만 김 중위의 사망 원인은 여전히 미궁인 상태라 유족들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부친 김씨는 “다행스러우면서도 여전히 허탈하고 분노감이 남아있다”며 “군 차원의 사죄가 있어야 이 일이 그제서야 끝이 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방부는 김 중위에 대한 순직 처리와 동시에 군 의문사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근원적 해결을 위해 국방부 차관 직속으로 군 의문사 조사ㆍ제도개선 추진단을 발족했다. 서주석 차관은 “군 의문사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무엇보다 군 의문사 관련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되찾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유가족이 이의를 제기한 군 의문사는 58건에 달한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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