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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나이 달라도 존중하는 마음만 있다면 친구

입력
2017.09.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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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동네책방이자 북스테이 숨의 주인장 이진숙(가운데)씨가 이곳을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웃고 있다. 숨 제공
광주의 동네책방이자 북스테이 숨의 주인장 이진숙(가운데)씨가 이곳을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웃고 있다. 숨 제공

동네책방 숨의 블로그, 북스테이 예약페이지에 글이 올라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분들이 찾아올까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우리의 공간과 책들이 그분들의 취향에 맞을지, 여러 마음이 교차합니다. 책으로 만난 이들은 예상할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연결점을 발견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니까요.

지난 5월 인천에 사는 한 가족이 일곱 살 난 아들과 함께 방문해서 재미난 하룻밤을 보내고 갔습니다. 마침 어린이날이라 아이에게 동네책방 숨에서 시작된 행사 중 하나로 어린이잡지 ‘개똥이네 놀이터’를 선물했습니다. 그 즈음 어린이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와 함께 시작한 ‘친구책방’ 프로젝트는, 지역에 있는 작은 책방이 잡지의 정기구독 신청을 받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을 출판사와 책방이 나누는 방식입니다. ‘숨 지기’가 오랫동안 애정해 온 어린이잡지였기에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지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구독자를 좀 더 가깝게 만나고 이익도 나눌 수 있어 지금껏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방문했던 가족이 이 설명을 듣고 돌아간 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숨 책방을 통해 정기구독을 신청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들을 위해 한 권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누군가 책이 필요한 아이에게 한 권, 총 2명을 위해 정기구독을 하겠다고 말하시더군요. 저희 책방에서 추천하는 아이면 누구든 선물로 주고 싶다는 이야기에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을 분을 통해 한 아이를 추천 받았고, 그 아이에게 재미와 관심을 선물로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고맙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북스테이 신청자 중에 그 가족과 같은 이름이 있어 ‘설마 그 가족인가?’ 하며 확인해 보니, 역시 그랬습니다. 아이가 지난봄 북스테이 경험이 즐거웠는지 여름 여행도 숨으로 가자고 했다더군요. 사실은 여행 떠나오기 전 아이가 꽤 아파서 취소를 해야 하나 걱정하면서도 광주까지 다시 발걸음을 했습니다. 이번엔 도서관, 다석의 서재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책놀이가 가능한 꾸러미를 가지고 뛰기도 하면서 가족이 함께 재미나게 시간을 보냈는지, 덕분에 아이는 몸도 많이 좋아져서 돌아갔습니다. 신기했던 일은 잡지구독을 위해 마을의 아이를 추천해 준 학교의 선생님이 마침 책방에 방문하게 되어 이 가족과 만난 겁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책방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고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연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내 아이처럼 지역의 한 아이를 보듬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습니다.

개똥이네 놀이터

보리 편집부 지음

보리 발행ㆍ1만원

가문비 나무의 노래

마틴 슐레스케 지음ㆍ유영미 옮김

니케북스 발행ㆍ232쪽ㆍ1만5,000원

북스테이를 하면서 서로 연결되는 장면을 보는 것은 마음을 넉넉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얼마 전 친구들이 함께하는 여행이라며 네 명의 여성이 책방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이, 이들의 나이가 각각 40대 후반, 50대 중반, 이제 60세로 다 달랐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물었는데, 한 단체의 공부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되어 첫 여행을 함께 왔다고 했습니다. 남편이나 아이, 일에서 잠시 떠나 여성들만의 여행을 함께 온 것도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 나이와 삶의 배경이 서로 다른 이들이 불과 2,3년 사이에 친구가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차이에 따른 위화감도 전혀 없이 10대 소녀들처럼 밤늦도록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삶의 의미 등 진지한 고민부터 건강과 몸매에 따른 조언까지, 그들과 잠시 함께했던 시간이 저희 부부에게도 무척 의미 있고 편안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책 외에도 서로에게 이 시간과 공간을 기억할 수 있는 선물을 하기로 했다며 책을 고르는 데 분주했습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여성분이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한 책이 바로 ‘가문비나무의 노래’입니다. 바이올린 장인이 쓴 에세이로 각 장마다 제작과정에서 느낀 이야기를 하루 단위의 짧은 글로 쓴 책입니다. 섬세하고 멋진 사진과 함께 적힌 구절들을 읽으니 마치 그들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일은 창조행위입니다. 나무가 제작자에게 맞추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장인이 나무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엄격한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제작자가 나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거룩한 상호작용에는 결과가 열려 있습니다. 열려 있지 않다면, 이 세계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조립’된 것이겠지요.” (‘가문비 나무의 노래’ 중 ‘나무를 존중하며 Day1’)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 모두가 기대하는 것일 텐데 왜 초록별 지구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 끊이지 않을까 생각하면 참담한 기분이 됩니다. 지나치게 결과에 집착하다 보니 자꾸 뭔가를 계획하고 조직(조립)하려다 경직되어 뒤틀려 버리는 것은 아닐까. 각각의 과정에서 서로 존중하고 정성을 다하면 나이와 배경이 달라도 친구가 되는 게 아닐까. 북스테이를 통해, 이곳에 잠시 책과 함께 머물러 가는 이들을 통해 날마다 우리는 인생을 배웁니다.

이진숙 동네책방 숨 · 북스테이네트워크(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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