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 잠정 폐쇄로 수출길 막혀
한국, 중동산 LPG값 폭등 피해
미국 텍사스주에 물폭탄을 쏟아부으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피해를 일으키고 있는 허리케인 ‘하비’가 세계 에너지 시장까지 크게 뒤흔들고 있다. 이 지역 주요 정유시설의 가동 중단으로 미국의 원유 정제능력 3분의 1가량이 줄어든 데다, 대부분의 항만들도 잠정 폐쇄돼 미국산 연료의 수출길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산 액화석유가스(LPG)의 주요 수입국이었던 한국과 일본 등으로선 ‘중동산 LPG 값 폭등’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정유공장 ‘빅2’인 사우디아라비아 기반 석유회사 ‘모티바’와 ‘엑손모빌’은 모두 텍사스주 소재 정제시설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 이미 폐쇄 조치된 다른 10여개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1일 300만배럴의 정제 작업이 중단된 셈인데, 이는 미국 전체의 정유 능력 30% 이상이며 브라질의 1일 석유 소비량보다도 많은 규모다. 그동안 부분적 생산을 유지해 오다 이날 결국 ‘완전 폐쇄’에 들어간 모티바는 “우선순위는 우리 직원과 지역사회의 안전이며, 홍수가 이 지역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 가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폐쇄 상태인 휴스턴 일대 항만 터미널이 언제쯤 운항을 재개할지도 불투명하다. 하비 상륙 첫날인 지난 25일부터 텍사스 걸프만에서 출발하는 LPG 선박은 단 한 대도 떠나지 못했다. 미 해군 경비대 관계자는 “대형 컨테이너선과 유조선이 안전하게 항해할 때까지는 몇 주일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텍사스주에서 생산된 프로판, 부탄 등 LPG가 조만간 세계 각국으로 운송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 셈이다.
미국산 연료의 수출 중단은 중동산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사우디 아람코나 쿠웨이트 KPC 등 중동의 LPG 회사가 프로판, 부탄의 9월 계약 가격을 1톤당 40~60달러 인상할 방침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때문에 미국의 올해 LPG 예상 수출량 2,800만톤 중 절반의 목적지인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로선 커다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WSJ는 “하비가 미국뿐 아니라 멕시코와 중국 등 전 세계의 에너지 공급에도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면서 “이는 미국이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 민간기상분석업체인 ‘애큐웨더’는 하비의 피해액이 1,600억달러(약 180조원)를 기록, 미국의 자연재해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종전까지는 2005년 8월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때의 1,180억달러였다. 현재까지 하비로 인한 사망자는 38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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