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칙 존중하지만…
엄격히 따져보고 인정해야
경영상 어려움 근거 모호”
31일 법원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에서 원고인 근로자 손을 들어준 데에는 최근 통상임금 판단의 최대 쟁점인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통상임금 소송 때마다 법원은 사측 부담에 따른 파장을 고려해 임금 청구에 제한을 걸어왔다. “느닷없이 통상임금을 적용하면 회사 경영상 어려움이 따른다”는 게 사측 논리였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는 사정이 증명되지 않는 경우라면 근로기준법 상의 권리가 보장되는 게 마땅하다고 봤다.
이번 소송에서 노사 양측이 주목한 바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여부보다는 ‘신의칙 원칙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는지’였다.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임금 청구소송을 심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성ㆍ일률성ㆍ고정성 등 통상임금의 3대 요건을 판시하면서 그 기준은 확립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당시 대법원은 임금 청구 줄소송 파장을 고려해 ‘신의칙’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사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고 임금협상에 합의한 것은 쉽게 뒤집을 수 없는 서로간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논리의 기저에는 회사의 재정과 경영상태가 악화하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날 기아차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권혁중)는 신의칙을 부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의칙 적용 조건 중 하나로 ‘사측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줘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를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측 주장대로 경영상 부담이 되는지 여부를 엄격히 따졌다. 재판부는 A4용지 9쪽 분량을 할애해 기아차의 2008~2015년까지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통상임금 반영 후 추정손익 등을 면밀히 분석한 내용을 제시했다. 그 결과 재판부는 “사측이 제시한 사업계획이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근로자들의 청구금액을 모두 지급한다고 가정해도 사측의 경영상태가 크게 악화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근로자들이 청구한 원금 중 재판부가 인정한 3,126억원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근로자 모두에게 지급한 경영성과급보다도 적고, 이자를 포함해도 4,223억원에 불과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또 사측이 신의칙 적용 주장을 해오면서 그 근거가 됐던 ‘경영상 어려움’에 대해서도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서, 도대체 추가 부담액이 어느 정도가 돼야 그런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신의칙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측이 최근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국의 통상압력 등으로 인해 영업이익 감소를 토로했지만, 이에 관해 명확한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점도 법원이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준 이유가 됐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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