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공소시효 폐지 이후
경찰, 은행 CCTV 페북 공개
“아는 언니 닮아” 결정적 제보
현금인출 가담 여성 2명 확인
통화내역 추적해 피의자 체포
지난해 3월 부산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검색하던 제보자가 경찰의 페이스북 미제사건 게시물을 우연히 본 것이다. 제보자는 경찰에 “(사진 속 용의자가) 아는 언니를 닮았다”고 말했고 이후 경찰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경찰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무려 15년간 미제로 남았던 ‘2002년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해결의 단초를 제공했다.
한ㆍ일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2002년 5월 31일 낮 12시 25분쯤 부산 강서구 명지동 해안에서 다방 여종업원 A(당시 21세)씨의 시신이 마대자루에 담긴 채 떠올랐다. 경찰은 A씨가 열흘 전인 21일 오후 10시쯤 사상구 한 다방에서 나오다 수십 차례 흉기에 찔린 채 피살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범행 이튿날 오후 한 남성이 사상구의 한 은행에서 A씨 통장으로 296만원을 인출하고, 같은 해 6월 여성 2명이 북구의 은행에서 A씨 적금 500만원을 해지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은행 폐쇄회로(CC)TV를 제외하면 용의자를 특정할 단서가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자칫 영구미제로 끝날 것 같았던 이 사건은 2015년 7월 말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이른바 ‘태완이법(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경찰의 보강수사가 시작됐다. 부산경찰청은 미제사건수사팀을 꾸려 이듬해 2월 페이스북에 은행 CCTV 사진을 공개했다. 아는 언니와 닮았다는 제보자의 전화는 이로부터 약 보름 만에 접수됐다.
덕분에 경찰은 이모(41)씨와 오모(38)씨 등 여성 2명의 신원을 파악하고 지난해 5월 검거, 이들이 현금 인출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경찰은 15년 전 확보한 은행 인근 휴대폰 통화내역을 일일이 대조해 적금인출 당일 오씨가 양모(46)씨와 통화한 내역을 확인하고 8월 중순 양씨를 체포했다.
양씨는 2002년 7월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풀려난 뒤 2003년 부녀자 강도강간 사건으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이로 인해 양씨는 집행유예가 취소돼 9년간 수감됐다 2012년 출소했다.
현재 양씨는 혐의를 일절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영상분석연구소에 CCTV와 양씨의 사진 분석을 의뢰해 “동일인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판정을 받았다. 또 범행시점에 양씨와 동거하던 여성에게서 “양씨와 함께 둥글고 물컹한 물체가 담긴 마대자루를 옮겼지만 당시 무서워서 어떤 물건인지 물어보지 못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부산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살인 등 혐의로 양씨를 구속하고, 사기 등의 혐의를 받는 이씨 등 2명은 10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부산경찰청은 앞서 2013년 8월 부산대 기숙사 여대생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용의자 수배전단을 SNS에 올려 시민 제보로 검거한 사례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도 은행 CCTV영상은 조회수가 232만건을 기록할 정도로 미제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며 “SNS를 통한 사건 해결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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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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