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밥은 먹고 다니니"... 송강호 영화 명대사

입력
2017.08.31 04:40
0 0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는 자신의 책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에서 작곡가와 그가 살던 시대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설명한다. 예로 든 작곡가는 베토벤이었다. 코플런드는 베토벤의 스타일을 ‘억세고 투박한 느낌’이라 표현하고, ‘교향곡 1번’과 ‘교향곡 9번’을 비교한다. “‘교향곡 1번’의 투박함과 ‘교향곡 9번’의 투박함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표현도 달라진 것이지요. 베토벤의 초기작은 투박하되 18세기 고전주의 악풍이 용인하던 범위를 넘지 않았습니다. 반면 원숙기의 베토벤은 자유를 열망하던 19세기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뒤였습니다. 한 작곡가의 악풍을 이해함에 있어 그가 살았던 시대가 그의 성격에 투영된 양상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억세고 투박하다’는 표현 대신 ‘엄격하고 우직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만 교향곡 1번과 9번의 차이에 대해서는 수긍을 하게 된다. 예술가는 시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시대와 함께 변화해 간다. 예술가는 동시대의 혼란을 온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최근 20년 동안의 한국 영화를 떠올릴 때 송강호라는 배우를 빼놓을 수 없고, 송강호라는 배우를 보고 있으면 20년이라는 시간이 송두리째 느껴지기도 한다. 송강호의 데뷔작은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다. 그의 최근작은 관객수 1,000만명을 넘어선 ‘택시운전사’다. 그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30편에 달하는 장편영화를 찍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1번’과 ‘교향곡 9번’을 비교하듯 송강호의 초기작인 ‘초록물고기’나 ‘넘버 3’와 최근작 ‘택시운전사’를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그는 (나이가 들어 외모가 달라진 것 말고는) 달라진 게 거의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언제나 그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변신하기보다 ‘송강호라는 개인’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쪽을 선택했다. 특유의 말투도 바꾸지 않으며, 다른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송강호라는 개인을 보여주면서도 30편에 가까운 영화 속 배역들이 모두 달라 보인다는 점이다. 하나씩 따져보니 나는 그동안 송강호 배우가 등장하는 모든 영화를 보았고, 영화 속 그의 대사를 한두 개씩은 기억해낼 수 있었다. 관객으로서 내가 겪은 20년이라는 시간을 송강호의 명대사로 정리해보았다.

영화 '넘버3'의 송강호.
영화 '넘버3'의 송강호.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는 특별하게 기억나는 대사가 없었다. 불륜에 빠진 남녀를 향해 “너희들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말할 때 약간 빈정대는 듯한 표정만 기억난다. ‘초록물고기’를 볼 때는 송강호가 정말 깡패인 줄 알았다. “야, 너 왜 인사 안 해?”라고 한석규를 불러 세울 때, 내 오금이 저렸다. ‘넘버 3’에서는 기억나는 대사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딱 소 앞에 서면 말이야. 너 소냐? 너 황소? 나 최영의야. (…) 내 말에 토, 토, 토, 토다는 새끼는 배반형이야, 배신, 배반형.” 친구들과 함께 송강호의 연기를 흉내내던 기억이 선명하다. ‘조용한 가족’에서 “저 학생 아닌데요?”라고 말할 때의 표정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쉬리’에서는 “사람 찾는 게 취미니까 헤어져야죠”라는 대사가 기억난다. 한편으론 로맨틱하고, 한편으론 시니컬했지. ‘반칙왕’에서도 그의 코미디 연기가 진가를 발휘했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는 척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다. “요즘 핸드폰은 통화 중에도 전화가 오네.” 송강호씨, 요즘 휴대폰에도 통화 중에는 벨이 울리지 않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를 기억할 것이다. “야, 야, 구림자 넘어왔어, 조심하라우”라고 말할 때의 능청스러움과 따뜻함을 기억할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아이러니 가득한 대사를 남겼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송강호.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송강호.
영화 '괴물'의 송강호.
영화 '괴물'의 송강호.

‘살인의 추억’에서는 국민 모두가 서로의 끼니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효자동 이발사’에서는 무엄하게도 각하를 향해서 이렇게 말한다. “각하도 참 오래 하십니다.” ‘괴물’에서는 “사망잔데요, 사망을 안 했어요”라며 시스템을 비꼬는가 하면, ‘우아한 세계’에서는 싸움이 벌어진 난장판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라고 비꼬기도 한다. ‘밀양’에서는 언제나 신애(전도연)씨를 걱정한다. “신애씨, 와 그래요? 어데 아파요?” 그는 묵묵히 신애씨 뒤에 서 있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는 “야, 내가 일직선으로 뛰어가는 게 낫겠냐, 이리저리 헷갈리게 뛰어가는 게 낫겠냐?”고 물었다가 정우성의 구박을 받았고, ‘박쥐’에서는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라며 태주를 살리려 애썼고, ‘관상’에서는 “난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진 못했소”라며 토로했다. ‘변호인’에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국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해줬고, ‘사도’에서는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왕의 고통을 한 줄 대사에 실었다. “나는 자식을 죽인 아비로 기록될 것이다. 너는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 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밀정’에서는 “나는 의열단원이 아닙니다”라는 한 마디로 이중 스파이의 복잡한 심경을 더욱 복잡하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2017년의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한 마디를 남겼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우리 모두 뒤돌아보아야 한다. 뭔가 두고 온 게 없는지. 송강호 배우님, 지난 20년 동안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김중혁 소설가〮B tv ‘영화당’ 진행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