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건설현장 관리자 A씨
“일주일 중 맘 편한 휴식 반나절뿐”
초과근무 기록 안해 보상도 없어
본사 지휘하면 근로기준법 대상
직접 신고, 따져야 돼 유명무실
아프리카의 한 건설현장에서 현장 관리자로 2년째 근무 중인 A씨는 수개월째 주 7일 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 평균 14시간(오전 6시~6시30분 출근, 오후 8~9시 퇴근)을 일하고, 현장 상황 악화로 출근일수가 늘어나면서 맘 편히 쉴 수 있는 때는 오전 근무만 있는 토요일의 오후 반나절뿐이다. A씨는 “향후 승진과 높은 월급을 바라보고 군말 없이 해외로 왔지만 일이 많을 때는 주 100시간 가량 근무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비교가 되지 않게 힘들다”라며 “월급이 한국보다 70~80% 가량 높지만 시급으로 따지면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라고 호소했다.
국내 장시간 근로 관행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지만, 해외로 파견간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채 국내에서보다 더한 장시간 노동에 신음하는 경우가 많다. 30일 업계관계자 등에 따르면 제조업체는 국내 근로자 중 대략 5% 안팎, 건설사는 최대 20%가량이 해외로 파견 나가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무역회사에서 2년 전 동남아시아의 한 현지법인으로 발령 난 B씨는 담당 공장에 문제가 발생할 때면 일주일 내내 근무하기 일쑤지만 초과근무 수당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B씨는 “한국에 있을 때는 내부 시스템으로 근무시간을 관리하고 야근과 주말 근무 수당도 받았지만 여기서는 초과근무를 기록하는 수단도 없을뿐더러 관리자들도 ‘공짜 야근’을 당연시하고 있다”라며 “한국보다 돈을 더 주니 잠자코 일하라는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파견 노동자들도 엄연히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다. 근로기준법은 속지주의(법을 자국의 영역 안에서만 행사)를 원칙으로 하지만, 국내에 있는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해외에 있는 노동자를 지휘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고용부의 행정해석 상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판단 기준은 해당 노동자가 어떤 장소에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국내 본사의 지휘 감독을 받는지 여부“라며 “본사에서 인사 발령을 내 현지 법인 소속이 되더라도 파견 후 본사로 복귀를 보장 받는 등 본사와의 고용관계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이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를 실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해외 근로감독을 기획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 행정력으로는 국내만 단속하기도 어렵다”라며 “해외 사례가 근기법 적용이 되는 사례인지를 하나하나 따져 보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가 직접 본사 사업장이 속한 국내 지청에 신고를 접수한 뒤 노사 양측의 증빙 서류를 검토하는 방법이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 파견은 국내와의 시차로 인한 초과 근무와 한 명이 여러 명 몫을 담당하는 등 기본적으로 노동강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라며 “해외여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해외 근무자를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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