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무조건 부정수급 판단은 잘못… 구체적 사정 따져봐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양육은 정서적ㆍ육체적 접촉 있어야”
육아휴직 후 아이와 떨어져 지내며 육아휴직 급여를 받았더라도 급여를 부정수급 하려는 시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특별한 사정으로 자녀와 동거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부모에게 양육의사가 없는 것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30일 정모씨가 육아휴직급여를 반환하도록 한 명령을 취소해달라며 서울고용노동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정씨가 해외로 출국한 뒤 육아휴직 급여를 신청해 지급받은 행위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률 조항에 따라 정씨가 해외로 출국한 뒤 양육이 없는 시기에 잘못 지급된 급여를 반환징수 할 수는 있다고 봤다.
정씨는 2011년 4월부터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신청해 매월 81만원의 휴직급여를 받았다. 정씨는 육아휴직 직후 아이와 함께 멕시코로 출국하기 위해 항공권을 구매했지만 아이의 건강상태가 나빠지면서 아이를 친정에 맡긴 채 남편과 둘이서 출국해 아이를 직접 양육하지는 않았다.
노동청이 자녀와 동거하지 않게 된 경우 7일 이내에 사업주에게 알려야 한다는 남녀고용평등법 조항을 들어 육아휴직 급여 807만원을 반환하라고 하자, 정씨는 “동거하지 않으면 육아휴직이 종료된다는 내용을 전혀 안내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실질적으로 아이를 양육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정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항소심을 맡았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자녀 양육의 본질적 요건으로 ‘실질적인 돌봄’을 들며 정씨가 자녀를 양육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후보자는 판결문에서 “육아휴직 급여 전액을 자녀에게 사용했더라도 급여를 받을 정당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정씨가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정서적ㆍ육체적 접촉을 통한 양육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 한 육아활동은 정씨가 회사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고, 오히려 (해외에 가지 않고 국내에서) 회사를 다녔다면 최소한 업무시간 외에는 자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므로 육아휴직을 통해 오히려 양육이 소홀해진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 후보자는 “급여 지급 제한사유로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경우를 두고 있지 않아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휴직급여를 받았다고 보기에는 다소 불분명하다”면서도 “법의 취지는 육아휴직 급여를 받으려면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휴직’에 해당해야 한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정씨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받은 것으로 본 것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이 사건을 다시 판단하라고 했다. 관련 법률은 육아휴직 확인서 등 서류에서 ‘자녀와 동거 여부’나 ‘직접 양육 여부’를 묻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이 “자녀와 함께 살지 않아도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정씨가 육아휴직 급여를 부정하게 수령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멕시코 체류기간 동안 지급된 육아휴직급여는 잘못 지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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