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한 쌍둥이 한풀이 채근
“꼬기 마이 먹었쪄요…”문자
검찰, 죄책감 이용한 사기 판단
법원은 “위안받았다면 충분”
2011년 1월 남편의 사업 문제로 서울 강서구에 있는 점집을 찾은 A(55)씨는 무속인 강모(45)씨로부터 “낙태한 쌍둥이의 한 때문에 지금 자식들에게 신벌(神罰)이 내릴 것이라 주기적으로 씻김굿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됐다. “당장 굿을 시작하지 않으면 자식들에게 계속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채근에 놀란 A씨는 앞뒤 가리지 않고 굿을 청했다. 그렇게 시작한 굿은 5년 가까이 이어졌다. 무려 133번이나 반복됐던 씻김굿 대가로 A씨는 강씨에게 5억6,000만원을 건넸다.
강씨는 쌍둥이 영혼에 승억, 승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에게 그들 영혼이 빙의된 것처럼 행세하기도 했다. ‘엄마 마음 알앙 속상해하지망. 엄마 사랑해’ ‘엄망 하트하트하트양’ ‘엄망 우이 엄망~~~히히히 꼬기(고기) 승억이 승옥이 마이마이먹었쪄요. 너무너무 조아조아~~~요’ 등 어린아이 말투를 흉내 낸 문자메시지도 A씨에게 여러 차례 보냈다.
검찰은 강씨의 지속적인 굿 권유와 빙의 행세가 사기에 해당한다고 봤다. 낙태 원혼을 위로하는 씻김굿은 통상 1회, 많아야 3회 정도가 보통인데 133번이나 한 것은, 돈을 목적으로 한 속임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쌍둥이 혼이 자신과 함께 있는 것처럼 A씨를 속여 이익을 챙긴 것으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낙태로 인한 죄책감을 교묘히 이용했다”며 강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심형섭)는 “무속 행위는 요청자가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위안이나 평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요청자가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도 무속인이 요청자를 속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가 굿을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면 그것만으로도 돈을 지불할 충분한 이유가 되기 때문에 사기로 볼 수 없다는 것. 더불어 재판부는 “A씨가 남편의 반대로 강씨를 찾아가지 못하다가 1년이 지나 스스로 찾기도 했다”며 “무속의 힘에 의지해 보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무속 행위를 (강씨에게) 부탁하거나 무속 행위 제안에 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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