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 5분 뒤 전국순간경보 발신
동시에 NHK 긴급방송 편성
새벽 사이렌에 잠 덜 깬 주민들
지진인지 전쟁인지 분간 못해 혼란
29일 아침 북한이 일본인들의 머리 위로 쏘아 올린 탄도미사일 도발로 열도가 경악했다. 출근과 등교 준비를 서두르던 일본인들은 홋카이도(北海道) 상공을 통과해 에리모미사키(襟裳岬) 동쪽 1,180km 태평양에 떨어진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을 듣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 급히 몸을 숨기는 등 공포에 얼어붙었다.
일본 정부는 미사일 발사 5분여 뒤인 오전 6시 2분쯤 ‘전국순간경보시스템’(J-Alert)를 발신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미사일 낙하 11분 만에 관저에서 대국민 발표를 했다. 일부 지역에선 옥외 스피커로 사이렌이 울리면서 잠에서 덜 깬 주민들이 ‘지진인지 전쟁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미사일 파편이 육지에 떨어져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신간센(新幹線) 열차가 멈춰 서고 학교들은 급히 휴교하는 등 이날 온종일 일본 사회는 충격과 불안에 들끓었다.
북한 미사일 등 발사체가 일본 열도를 통과하기는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 이후 다섯번째다. 하지만 과거 사례는 일반 국민이 인지하지 못한 채 상공을 지났거나 인공위성이 실리는 등 탄두가 탑재된 발사체가 아니었다. 특히 이번 도발은 북한이 일본 상공을 지목하며 괌 주변 공격을 예고한 뒤 이뤄진 것이어서 공포의 체감 정도는 극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긴박한 분위기에 비교적 신속히 대응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오전 6시 40분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항공기와 선박안전 및 낙하물 피해를 확인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오전 7시 8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뒤 북한에 대해 “폭거”라며 “전례 없는 심각하고 중대한 위협이다.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장관은 “최대사거리 5,000㎞로 당연히 괌에 도달할 수 있다”며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날 미사일 발사과정을 전국경보시스템과 NHK방송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하듯 전파했다. NHK는 미사일 발사 추정(오전 5시 57분) 5분 뒤인 6시 2분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국민 보호에 관한 정보’라는 제목의 긴급방송을 편성해 “튼튼한 건물이나 지하로 피난해달라”고 방송했다. 대상은 홋카이도, 아오모리(靑森), 이와테(岩手), 도치기, 나가노(長野) 현 등 12개 지역이었다. 지진이 아닌 북한 미사일로 피난권고가 내려지긴 사상 처음이다. 휴대폰 긴급메시지도 일제히 발송됐다. 홋카이도 하코다테(函館) 수산물 도매시장 관계자는 “미사일이 날아오는 동안 경매를 하고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었다”라며 “정부는 북한에 대해 과거 어떤 도발 때보다 엄하게 대응해달라”고 NHK에 말했다. 홋카이도어업조합측에 따르면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지나는 동안 어선 15척이 인근 해역에서 항행 중이었다고 전했다.
홋카이도 삿포로(札幌) 시내 JR삿포로역 전광판에는 “북한 미사일 영향으로 각 방면의 열차가 지연되거나 정지됐다”는 안내 문구가 표시됐고, 역에 있던 한 여성은 “휴대폰 긴급문자로 ‘도망가세요’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호텔 방을 나오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센다이(仙臺)역에선 놀란 승객들이 역사 건물을 떠나지 못한 채 공포에 떨었고, 인근 야간 운행 버스는 경보음이 울리자 지하철역 밑으로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야마가타(山形)현 쓰루오카(鶴岡)시 네즈카세키항에서 작업 중이던 80대 남성은 “방재사이렌이 평상시와 다른 섬뜩한 소리여서 놀랐다”라며 “미사일이 또 언제 떨어질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에는 충격적인 당시 상황을 전하는 글들이 빼곡히 올라왔다. 이바라키(茨城)현의 한 주민은 “창문, 커튼을 모두 닫고 아이들을 방 한가운데 모이게 했다”고 전했으며 유튜브에선 긴급 경고음이 울리는 영상물 등이 속속 올라왔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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