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한림읍 주민들 거리로 나와
무단 축산 폐수 배출에 항의 집회
지하수 통로 ‘숨골’에까지 버리자
“생명수인 물에 독약 탔다” 격분
제주지역 돼지 사육 농가 인근 주민들이 결국 아스팔트 위로 나왔다. 사육 농장에서 나오는 악취뿐만 아니라 폐수 무단 배출이 도를 넘어섰다며 항의하면서다. 특히 일부 농가가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가 생성되는 통로인 ‘숨골’에다 축산폐수를 버린 것으로 드러나자 그간 애써 코 막고, 눈 막고 살다시피 했던 주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양돈장이 밀집한 제주시 한림읍 지역 주민들은 29일 한림읍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행정당국은 축산 악취와 폐수 무단 배출 등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양돈 농가를 강력히 처벌하고 피해 예방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주민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림에서는 축산 악취와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지역주민들이 고통을 받아왔다”며 “축산 악취와 환경오염이 계속 발생하는 동안 행정당국은 무엇을 했느냐”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민원이었지만 조치는 방역차량의 일회성 운행이나 소량의 약품지원 같은 것뿐이었다”며 “근본적인 원인 해결책은 뒤로 한 채 소극적인 민원해결로 이런 사태를 야기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거리로 나온 데는 일부 양돈농가가 빗물이 땅속의 지하수 함양지대로 흘러 들어가는 통로인 ‘숨골’에 축산분뇨를 흘려 보낸 게 결정적이었다. 앞서 제주도 자치경찰단은 일부 비양심적인 양돈 농가가 축산 폐수를 ‘숨골’로 무단 배출한 사실을 적발했다. 숨골은 용암동굴이 붕괴하거나 지표면 화산암류가 갈라져 빗물이 지하로 잘 흘러 들어가 지하수를 생성하는 통로이지만, 반면 오염에도 취약한 곳이기도 하다.
자치경찰은 가축 분뇨 무단방류 혐의가 확인된 양돈장 6곳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고, 일부 농가들은 혐의를 일부 시인한 상태다. 모 양돈 영농조합법인은 가축분뇨 자원화 시설 저장조에 설치된 모터 펌프에 고무호스를 연결하는 방법으로, 저장조의 가축분뇨가 가득 차면 인근 숨골 지하구멍으로 무단 배출해온 정황이 포착돼 수사를 받고 있다. 자치경찰 조사 과정에서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에 있는 용암동굴은 물길을 따라 흘러 들어간 가축 분뇨 찌꺼기로 뒤덮여 오염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림읍 주민들은 “숨골은 우리의 생명수인 지하수가 다니는 길인데 축산폐수를 무단 방류했다”며 “이는 생명수인 물에 독약을 타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격분했다. 이들은 또 “청정제주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양돈농가들뿐”이라며 “양돈농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제주도민들은 똥물을 먹는 게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주민들은 이날 환경오염을 유발한 양돈 농가를 구속하고 즉각적인 진상 조사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또 도내 모든 양돈 농가에서 발생하는 축산 폐수를 처리하기 위한 '가축 분뇨 자원화 시설 저장조' 운영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조례 개정 등을 통해 축산폐수 무단투기에 대한 처벌수위를 상향 조정할 것을 촉구했다. 현행 가축 분뇨의 관리와 이용에 관한 법률은 축산폐수를 땅에 무단 방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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